컴퓨터 프로그램상에서 역분석(리버스 엔지니어링)이 국제여론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허용 1년 만에 다시 제한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내달 국회에서 처리될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5차 개정을 통해 역분석 행위보다는 저작권자의 권리보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분석을 이용한 프로그램 창작행위를 사실상 금지토록 할 방침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및 반도체칩 분야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프로그램 역분석 허용 조항이 외국의 요구에 의해 다시 제한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역분석 행위의 제한을 주장하는 세력이 자국에서는 이를 허용하고 있는 미국과 EU 등 강대국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적지 않게 안타깝게 한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상의 역분석 허용은 지난 95년 제2차 개정 때 본격 논의됐으나 미국 등 선진국의 압력에 따라 개정 자체가 무산되었다. 이어 지난해 말 단행된 제4차 개정 때 「확인·분석·연구·교육 등 일정한 범위 내에서 공정한 사용(fair use)」이라는 전제를 두고 처음으로 역분석이 허용(법 제12조 제6호)돼 지난 7월부터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미국 등이 제12조 제6호가 너무 포괄적이라며 이의제기를 해옴에 따라 정부가 개정작업에 나선 것이다.
역분석이란 기존 프로그램을 거꾸로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설계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추출함으로써 기술향상과 또다른 창조를 추구하는 고도의 프로그램 행위다. 소프트웨어의 경우는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목적프로그램을 복사한 다음 이를 소스프로그램으로 변환(decompilation)시켜 그 구성내역을 알아보고 이를 새로운 창조물 계획에 반영하는 과정을 말한다.
역분석은 따라서 업계의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수단이기에 앞서 기존의 성과나 결과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으로서 널리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창작하기 위한 해석공학으로서 역분석은 저작권법상의 원리에 따라 불법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 국제관행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지난 93년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은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이며 그 내용, 즉 아이디어와 학술적인 이론 등은 독창성·신규성이 있다 하여도 보호대상이 아니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프로그램상의 역분석 행위를 프로그램 침해행위로 보지 않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물론 모든 역분석 행위를 합법적이며 프로그램 저작권의 침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분석을 통해 기존 프로그램을 변형했거나 유사 프로그램을 제작·판매함으로써 원저작자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쳤다면 이는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행위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따라서 역분석을 허용하되 이같은 범위 일탈행위를 방지하는 선에서 관련조항을 규정하면 되는 것이다. 역분석 조항을 지나치게 규제할 경우 오히려 선행기술에 대한 분석·평가 등을 보호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등과 상충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확인·분석·연구·교육」을 행하기 위한 역분석 허용 조항은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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