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의 메카에서 한국벤처산업의 메카로」.
명실공히 한국판 실리콘밸리의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덕밸리가 28일 국내 벤처집적단지로는 처음 「대덕밸리」 선포식을 갖고 첨단 신산업단지로의 위상 다지기에 나섰다.
이번 대덕밸리 선포식은 국내 과학기술의 본산인 대덕연구단지가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벤처산업의 메카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를 계기로 벤처기업 창업붐을 재조성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덕밸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붐을 일으킨 정보기술(IT)산업과 함께 생명공학연구소를 중심으로 LG·SK·삼성·한화 등이 이어지는 민간연구소의 바이오분야 연구투자로 바이오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원자력연구소가 추진중인 원자력단지까지 조성되면 대덕밸리는 그야말로 IT - 바이오기술(BT) - 원자력기술(NT)을 보유한 벤처기업들이 하나로 뭉쳐 있는 종합 벤처밸리로 우뚝 설 전망이다.
지난 73년 12월 대덕연구단지가 대덕연구학원도시로 출범한 뒤 78년 원자력연구소 입주를 계기로 지난 27년간 쏟아부은 예산만 30조원이 넘는다. 대덕연구단지는 834만평의 부지에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 등 70여개 연구기관이 입주해 산·학·연·관 복합연구단지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이제는 450여개의 벤처기업이 연결돼 과학과 산업의 국가적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가지를 친 벤처기업수만도 7월말 현재 벤처인증기업 370곳과 실험실 창업까지 합쳐 450여개에 이른다. 이는 지난 95년에 비해 1500% 늘어난 것이다. 또 20개의 창업보육센터에 550실과 다산관·장영실관 등 4개동의 벤처협동화단지에 입주한 기업을 합치면 그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난다.
이번 대덕밸리 선포식은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기술벤처의 집적지로서 위상을 한층 강화하고 대내외적으로 국내 최고의 벤처산업단지임을 천명하는 자리다.
이에 따라 대덕밸리는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과학산업단지와 대전 3·4산업단지 및 엑스포과학공원, 둔산권과 유성지역까지를 성장축으로 연결하고 나아가 충남 천안과 아산 중심의 테크노파크, 충북의 오창과학산업단지 등과 환상적인 벤처 트라이앵글을 이루게 돼 국내 벤처창업 붐 조성은 물론 벤처기업인과 연구단지의 연구원들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대덕밸리는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로 지정, 「벤처협동화단지」 및 「벤처산업전용단지」의 조성 등 벤처밸리의 필수적인 인프라 확충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무한기술투자와 KTB네트워크 등 서울 중심으로 자금을 공급해온 벤처투자사들이 대덕밸리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 것도 대덕밸리가 기술력 외에 자본력까지 갖추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황 = 대덕밸리의 태동은 공교롭게도 지난 97년 말 IMF 경제위기가 대덕연구단지에도 불어닥치면서부터다.
정부출연연과 민간연구소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연구소를 나온 고급 연구인력들은 주저없이 벤처행을 택했다.
90년 중반 이후부터 조금씩 불기 시작한 벤처 열풍은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과학산업단지, 제3·4산업단지, 엑스포과학공원 등 대전시 일대로 급격하게 확산됐다.
이같은 벤처 붐은 통계적인 수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7월말 현재 대덕밸리에서 활동하면서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은 업체만도 370개에 달하고 있으며 인증을 준비중인 업체도 80개사나 되는 등 총 450개의 벤처가 이 곳 대덕밸리에 포진돼 있다.
이는 국내 전체 벤처기업 7735개 가운데 6%를 차지하는 적지 않은 수치다.
공식적인 집계에 미처 확인되지 않은 벤처까지 포함한다면 적어도 600여개의 벤처가 대덕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97년 120개에 불과했던 대덕밸리 벤처기업은 98년 250개, 99년 300개로 급성장했으며 올해 말까지 500개, 2001년 700개, 2005년에는 2500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벤처기업의 유형별로는 정보통신분야 기업이 217개로 전체의 48%를 차지하고 있으며 환경·기계 105개(23.1%), 생명·화학 55개(12.3%), 원자력·반도체 28개(6.6%), 기타 45개(10%) 순이다.
이들 기업의 대부분은 제조업 중심의 첨단 고부가가치 신기술 개발에 주력, 인터넷 중심의 테헤란밸리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대덕밸리는 최근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50여개의 바이오벤처가 올해 이 곳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구개발에 힘을 실어온 대덕밸리의 두드러진 약진은 지난 8월 블루코드테크놀로지를 선두로 하이퍼정보통신 등 2개 업체가 코스닥 시장에 등록한 것을 비롯, 동양엔터프라이즈와 새길정보통신의 제3시장 진출 등으로 외부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오프너스·다림비전·지씨텍 등 3개 업체도 올 연말까지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중에는 지란지교소프트·카이·한국인식기술·한백·IPS 등이 코스닥 등록을 추진중에 있다.
대덕밸리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파급 효과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98년 2400억여원에 불과했던 대덕밸리 기업들의 매출액이 99년에는 3000억원을 넘어섰으며 고용인력도 98년 3000명에서 지난해에는 4500명으로 50%나 늘었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500여개의 벤처기업에서 매출액 1조4000억원에 6000명의 고용효과를, 벤처기업이 안정기로 접어드는 2005년에는 적어도 5조원 가량의 매출액 달성도 가능하리라는 전망이다.
◇미래 = 대덕밸리는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다시 세우는 벤처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기술력과 우수한 인력으로 무장된 대덕밸리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덕밸리가 진정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취약한 벤처자본과 크게 내세울 수 없는 마케팅 능력은 대덕밸리내 벤처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딜레마다.
현재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대부분의 벤처자본은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 벤처산업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덕밸리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은 있는데 시장이 없다』는 모 벤처기업인의 말처럼 벤처자본 시장이 지방에도 형성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최근 무한기술투자·산은캐피탈·신보창업투자 등이 올해 대전지점을 개설하는 등 잇따라 대전 진출을 시도, 그나마 대덕밸리의 숨통을 터주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꽁꽁 얼어붙은 자금 시장을 얼마나 풀어줄 수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부가 나서 우수한 벤처 생태계 여건을 갖고 있는 대덕밸리를 정책적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대덕밸리 벤처업계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한준호 중기청장은 『대덕밸리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파생된 풍부한 고급 연구인력과 연구소의 자체 보육센터 설치 등을 통해 개발기술의 사업화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올 하반기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 선정 등을 통해 지방벤처의 활성화를 도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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