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밸리를 가다>하-제한적 개방정책, 제도 미비 옥에 티

올상반기 남북교역액은 2억28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억6496만달러에 비해 22.9% 증가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남북간 교역액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남북교류가 최근 들어 활발한 데 힘입은 바 크지만 그동안 폐쇄경제 정책으로 일관해온 북한의 경제개방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속화되고 있고 남한 기업들의 활발한 북한 진출을 고려하면 남북한 교역액은 당분간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희망적 분석의 중심에는 역시 북한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수용하고 전격적 중국 방문에서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높게 평가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이 마침내 개혁·개방 쪽으로 정책노선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재 북한이 취하고 있는 개방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제한된 지역이나 분야를 선택적으로 고립시켜 개방함으로써 체제 내부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이는 나진선봉 경제특구, 금강산관광구역, 서해공단 등 수도인 평양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개방함으로써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차단함과 동시에 개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북 경협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북한의 소극적인 개방정책과 제도적 장치의 미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거점지역의 개방을 점차 확산시키는 적극적 개방정책을 펼쳐온 데 비해 북한은 제한적으로 개방을 실시하고 개방에 따른 영향을 차단하는 고립분산적 개방정책을 추진해왔다. 북측이 남한 기업의 투자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남북한 경협 확대를 위해서는 북측의 자세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북투자에 앞서 남한 기업들은 북한 노동력의 질적 수준과 주요 산업별 기술수준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또 북한은 여타 사회주의국가나 개발도상국과 다른 사회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에 따른 경협모델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체제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경협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선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보여주는 변화의 움직임은 다각도로 나타나고 있다.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산하 5대 기업의 유연한 대남관계에 기초를 둔 적극적인 대남 경협사업 추진을 비롯해 외화벌이를 위해 조직경쟁을 독려하고 100여개의 수출기업과 공장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등 자본주의 논리의 수용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또 지식정보사회의 기초가 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도 북한의 변화조짐 가운데 하나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교시를 통해 21세기를 과학의 시대라고 밝힌 이후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이어 무역도시인 신의주를 과학기술특구로 지정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 방송을 통해 전자자동화 분야와 컴퓨터 분야 등 첨단과학기술과 경제 관련 서적 출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린 바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과 경제에 대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경제난 타개와 지속적인 외화 수입확보를 위해 대외적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는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남쪽의 기술과 자본이 결합된다면 우리 기업들은 더 이상 해외투자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 남과 북의 경제적 결합은 지정학적으로 우리의 경제적 공간을 유라시아로 확대할 수 있다. 남북한간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에서 북한과 중국을 거쳐 유럽의 심장부인 파리까지 인력과 물자가 이동하게 된다.

 남북의 긴장완화는 당장 양쪽 모두의 대외신인도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앞으로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이 가져올 혜택들을 예로 들자면 한이 없다.

 다만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당분간 남쪽의 적극적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상호의존과 공동번영을 위해서는 우선 양쪽의 격차를 좁히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3월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의 경제회복을 위해 사회기반시설(SOC)과 농업구조개혁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남한이 가진 뛰어난 기술과 북한이 보유한 우수인력의 교류를 통해 남북한 협력가능성을 차츰 높인다면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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