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1-대통합시대>디지털 대융합 새문명 시작됐다

로마는 군사적으로는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정복당했다. 로마인들은 좋다 싶으면 그것이 적의 것이라도 거부하기 보다는 모방하는 쪽을 택했다.

 포장도로는 로마인이 등장하기 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을 네트워크로 만들면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제국 전역에 포장도로망을 건설한 것은 로마인이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천년을 지속한 제국 로마의 키워드를 시오노 나나미(로마인이야기의 저자)가 풀어낸 것이다.

 서태지는 음악적 천재로서가 아닌 한국 최초의 「문화권력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천재성이 더욱 빛난다. 그는 뒷골목 흑인 음악으로 치부되던 랩의 의미를 90년대 한국의 시대상황과 연계해 정확히 읽어내고 이를 가장 한국적 정서로 흡수,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음악을 시대정신으로 연결시켜 나갔다. 그는 그렇게 문화 권력을 획득한 「가수」였고 정치권력만이 존재했던 한국에 문화에도 권력이 작용한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 최초의 음악가였다.

 조성모나 HOT도 서태지를 능가하는 대중적 인기를 과시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서태지와 같은 「문화권력자」로 부르지 않는다. 권력이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오로지 서태지만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그의 문화적 권력 의지를 관철시킨 사람이다.

 지구상 유일의 슈퍼 파워인 미국에서는 과연 누가 진정한 「지구 대통령」인가를 두고 씨름이 한창이다. 제도권력, 정치권력의 대명사인 빌 클린턴과 사상 최강의 경제권력, 문화권력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간의 다툼이다.

 빌 게이츠는 디지털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21세기 시대정신의 총화다. 클린턴이 지구 평화를 보장한다면 게이츠는 인류의 삶의 양태를 바꾸고 질을 높여 나가는 「문명사적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지구촌은 우리가 접근하려고 클릭하는 그 순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권력의지에 의해 통제된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밀레니엄 패러다임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개발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기술이건 사들인다. 시오노 나나미식으로 따지자면 인터넷 시대 「제국 로마」의 모습이고 빌 게이츠는 로마인에 해당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경박단소(輕薄短小)로 상징되는 산업사회 패러다임, 즉 끝없이 나뉘고 세분화되어 가던 산업사회의 기술과 문화 발전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소위 장르라 불리는 섹터 개념은 마치 원자, 전자 등 더 이상 쪼개기 힘든 물질의 구성 원소에 이른 것처럼 극한에까지 도달해 있다.

 도대체 하늘 아래 처음인 것을 발견하기도 발명해 내기도 어렵게 됐다.

 이제 되돌아 가고 있다. 복합화, 융합화, 통합화가 그것이다. 인류가 선보일 것은 모조리 나와 있는 시대에 새로운 것은 이들을 어떻게 엮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수소와 산소를 섞으면 물이라는 전혀 다른 개체가 탄생하듯이 통합이라는 개념이 21세기의 키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우생학에선 이종교배(異種交配)를 통해 훨씬 경쟁력이 강한 생명체가 탄생한다고 한다. 이는 생물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 집단인 한국의 대학들도 최근에는 교수 채용시 모교 출신을 제한한 채 타교 출신 인사를 강제로 끼워 넣는다.

 학문의 순혈주의보다는 이종교배를 통한 경쟁력 제고가 더 절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이랴. 지연, 학연, 혈연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사회 구조에도 역시 화합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대세가 밀려들고 있다. 50년 갈등으로 총부리를 겨누던 남북한에도 화해와 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의 맨 앞에 서 있는 산업에선 이같은 움직임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탁기, 냉장고가 정보가전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과 통합되고 전화기와 TV, 비디오, 오디오는 IMT2000이라는 손바닥만한 단말기로 통합돼 인터넷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다. IBM이 애니악이라는 컴퓨터를 처음 만들 때 그것은 어지간한 대형 사무실 방 한 칸을 가득 메울 만한 크기였지만 이제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바뀌었다.

 대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가능케 하는 밑바탕은 인터넷과 경쟁력이다.

 인터넷에는 인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인류가 창출해낸 모든 정보 즉 학문, 기술, 사상, 예술의 A부터 Z까지 실려있다.

 이 정보가 매력적인 것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에서나 열려 있다는 점이다. 정보 접근의 무차별성, 무한 유통성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는 넘쳐난다. 인터넷에 클릭만하면 어떤 분야에서건 세계 최고의 석학, 기술자들의 모든 것을 알아 볼 수 있다. 이런 판에 전문가의 의미는 갈수록 퇴색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라는 것은 정보의 희소성에 기초한 특정분야의 정보독점 인물이다. 인터넷이 이를 허물었다.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사람보다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영문학 문외한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산업사회의 아날로그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디지털 개념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정보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면 산업사회적 시각의 경쟁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네가 하면 나도 할 수 있는」 시대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패러다임의 경쟁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정보 접근권을 활용, 차별화되고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바로 통합의 능력이다. 통합에서 경쟁력이 생긴다.

 바둑판으로 비유하자면 흑돌과 백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은 한정돼 있지만 수순에 따라 한 판의 바둑이 이루어지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분석해도 무한대다.

 슈퍼컴퓨터가 인간과의 바둑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계산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기계가 단선적 계산으로는 엄두도 못낼 경험과 지혜를 바둑 한 판에 쏟아 부을 수 있다.

 그 인간의 우월성은 바로 정보를 무한대로 응용할 수 있는 통합능력이다. 포석에서부터 마지막 끝내기까지 한 판의 바둑 전체를 조망하면서 수순을 밟아 나가는 통합력이다.

 인터넷, 디지털 시대의 경쟁력은 널려진 정보의 가치를 꿰뚫어 보고 이를 하나로 묶어내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정보의 용광로 속에 모든 것을 털어 넣고 전혀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통합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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