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아시아 IT 대로망>3회-용틀임하는 중국대륙

북경에서 정동쪽으로 400㎞ 떨어진 바닷가, 베이다이허(北戴河). 인민들이 여름이면 즐겨 찾는 이 해수욕장의 한 모퉁이에 출입이 금지된 별장지대가 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7월 말, 이곳에 중국의 지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 리펑(리붕) 전인대 상무위원장, 주룽지(주용기) 총리 등 최고 실력자들이다.

며칠동안 외빈을 만나거나 휴식을 취하던 이들은 어느날 저녁 장쩌민의 거처에 모였다. 중국내 모든 공식 회의보다도 중요한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의례적으로 사회는 서열 2위인 리펑 위원장의 몫이었으나 올해는 달랐다. 주룽지 총리가 시종일관 회의를 이끌었다.

첫 주제는 인민들의 불만이 폭발직전인 고위층 부패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다. 이 주제를 내건 사람은 다름아닌 주룽지 총리 자신. 주 총리가 부패한 고위 관리들에 대한 처단을 소리 높여 외치자, 분위기는 다소 살벌해졌다.

주 총리의 건너편에 앉아있는 리펑 위원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며칠 전 사형선고를 받은 최측근인 청커제(成克杰.) 전인대 전 부위원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청 부위원장은 한달 후 9월 14일 처형됐다.

이어 회의는 후계구도로 이어졌으며 서부 대개발, 국유기업 개혁에 따른 실업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주제를 넘나들며 난상토론으로 이어졌다.

대체로 결론은 이끌어낸 사람은 역시 주룽지 총리였다. 치밀한 논리와 이를 잘 포장하는 달변의 힘이다.

그러나 1년 전 회의 때는 달랐다. 주 총리는 그다지 말이 없었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소식통들은 아마도 지난해 11월 중국과 미국이 타결한 미국과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주 총리는 WTO 가입협상으로 지난해를 무척 힘들게 보냈다. 협상의 고비마다 나토군의 유고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이니 파룬궁 사건 등이 터져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주 총리가 참기 힘들었던 것은 자신을 향해 쏟아진 동지들의 비판이었다. 특히 「매판자본주의자」니 「경제 매춘부」니 하는 욕설에 가까운 험담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정책에 대한 인민들은 높은 지지도 때문이었다.

중국이 미국과의 협상을 끝냈던 지난해 11월 중순, 중국 내부에서는 『클린턴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러시아가 힘을 잃은 마당에 중국까지 미국과 타협함으로써 미국 독주의 「팍스 아메리카」를 저지하기는 커녕 방조했다는 비난이다. 자리를 물러난 관료들이나 국영기업 실직자들의 원성은 올해에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비난에 대해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는 『뭘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두 사람은 몇년 전 짜놓았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쩌민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의 세계 전략은 중국 사회과학원 유길 부원장이 지난 97년 펴낸 「당대 중국이 서둘러 해결해야 할 27개 문제」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는 조지 마들스키라는 서방 역사학자의 「세계사 공식」이 소개됐다. 포르투갈 → 네덜란드 → 영국 → 미국 등으로 이어진 세계 패권에 대한 공식이다.

마들스키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각각 스페인·프랑스·독일·소련 등의 도전자들을 무너뜨리고 가장 긴밀한 협력자에게 패권을 물려줬다.

「초강대국 미국과 협력해 힘을 축적한 후 21세기 후반부를 노린다.」

중국이 마련한 패권전략이다. WTO 가입도 미국과의 협력 무드를 조성하기 위한 행동일 따름이다.

당장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없는 것은 아직 역량이 모자라서다. 더구나 경제력은 미국에 한참 뒤진다.

중국의 자원과 인력은 미국보다 풍부하다. 그래도 세계 자본시장을 장악한 미국에 비하면 중국의 경제력은 보잘 것 없다.

「먼저 경제력을 키우자.」 선지자 덩샤오핑이 78년 권력을 잡을 때 외쳤던 「선부론(先富論)」이 지금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장쩌민과 주룽지, 그리고 곧 후계자가 될 후진타오(호금도) 국가 부주석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직 유럽연합(EU) 등과의 WTO 협상이 남아있으나 내년부터 본격 가동되면 세계 자본이 중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미 상당액 흘러들어온 홍콩과 대만 등지의 화교 자본에다 서구 자본까지 들어오면 중국은 곧 일본과 견줄만한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

자본이 들어오면 중국의 산업 자체가 외국에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걱정에 대해 장쩌민과 주룽지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대답한다.

자국의 산업이 유린되도록 놔두지도 않겠지만 이미 자국 산업의 자생력은 공고해졌다.

중국의 전자산업을 보면 안다. 어디 만만한 기업들이 있는가.

10년 전만 해도 중국의 가전시장은 외산제품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컬러TV와 비디오CD플레이어에서 냉장고, 세탁기까지 거의 모든 시장이 중국업체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이제는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플레이어와 디지털TV와 같은 디지털 가전제품도 한국·일본산 제품과 버금갈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다.

「괄목상대.」 중국 전자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가리키는 데 이처럼 적합한 말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정보기술(IT)은? 이 대목에서는 중국 지도부의 목소리도 작아진다. 그래도 자신감만은 잃지 않는다.

『IT 경쟁은 결국 머리싸움인데 천하에서 중국만큼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가 있는가.』

그러면서 중국 지도부는 베이징(북경) 서쪽 하이덴규의 중관춘(中關村)을 가리킨다. 외국 IT업체와 중국 IT벤처업체들이 밀집한 이곳은 중국의 실리콘밸리(硅谷)다.

인근 칭화(청화)·북경대학, 북경이공대 등에서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야심을 펼치고 있다. 입주한 업체 수만 7000개 안팎이다.

외국인들은 중관춘이 최근에야 조성된 곳인 줄 알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첨단 산업단지다.

중국 정부는 지난 88년 첨단과학기술발전을 위한 「횃불계획」이라는 장기전략을 마련했다. 중관춘은 이 계획의 첫 단추인 첨단기술개발구 제1호다.

중관춘뿐만 아니다. 북쪽 하얼빈에서 서쪽 란저우까지 중관춘과 같은 첨단기술개발구가 전국 53곳에 이른다.

지난해 6월, 장쩌민은 중관춘을 직접 찾아 『10년 안에 대만의 신주반도체단지를, 20년 안에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따라잡겠다』고 말했다. 그냥 한 말이 아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이제 IT산업에서 나온다. 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 밀렸던 경제력을 되찾게 된 것도 IT산업의 부흥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세계 IT산업을 장악해 세계 경제 패권을 쥐고 흔들었듯이 중국도 머잖아 세계 IT산업의 강국으로 우뚝 서 미국과 한판 겨뤄보리라.

중국 지도부는 이러한 꿈을 달성하기 위해 IT를 비롯한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주룽지 총리는 지난 3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정보·생물공학·신에너지·신소재 등의 신흥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산·학·연의 결합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내년부터 2005년까지 시작하는 「10.5」 경제개발계획에도 서부 개발과 아울러 첨단기술산업의 육성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IT산업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관심은 정책 당국의 명칭 변경에서도 일부 드러난다. 중국의 정보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은 「신식산업부(信息産業部)」다. 信息은 「뉴스」나 「정보」라는 뜻으로 신식산업부는 우리말로 치면 정보통신부다.

국무원 소속의 이 부서는 98년 기존의 전자공업부가 탈바꿈한 조직이다. 전자공업부는 지난 82년 기계공업부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중국 정부가 기계화·산업화에 이어 정보화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 부서 명칭 변경에도 녹아들어있는 것이다.

신식산업부는 중국 실력자들과 밀접한 부서다. 장쩌민 주석은 지난 83년부터 3년동안 전신인 전자공업부장을 맡았다. 주룽지 총리의 동지인 후치리(胡啓立)도 93년부터 조직명칭을 바꾸기 직전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덩샤오핑 시대와 장쩌민 시대를 구분하는 한 척도는 「테크노크라트」의 득세다. 장쩌민은 공대 출신 인물들을 대거 발탁해 차세대 주자들로 키웠다. 현 실세인 주룽지 총리와 차세대 실세인 후진타오는 중국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의 공대를 나왔다.

이것은 중국 지도부가 앞으로 IT산업의 육성에 얼마나 공들일 것인지 짐작케 한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은 농업국가다. 그렇지만 IT 대국으로 잠재력도 대단하다.

자주국방에 주력하면서 첨단 전자기술과 노하우를 적잖이 확보했다.

러시아와의 갈등도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도 사라진 마당에 이러한 군사기술을 그대로 썩힐 필요가 없다. 국영기업에 이양할 경우 첨단 하이테크산업을 크게 육성할 수 있다.

또 중국은 인구 13억명의 세계 최대 시장을 갖고 있다. 한 가구당 컬러TV 한대만 사도 몇대인가.

내수용으로 잘만 키워도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진짜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 문제는 홍콩을 되찾으면서 완전히 해결됐다. 청쿵(成功)그룹을 비롯해 홍콩은 거대 화교자본의 메카다.

리카싱(李嘉誠·72) 청쿵그룹 회장의 경우 홍콩의 시사주간지 선정 「아시아 최고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장쩌민 주석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장쩌민 주석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은 리카싱을 품안에 두고 있지 않은가.

적대관계가 끝나지 않았으나 대만도 중국의 경제 패권 장악을 위한 동반자다. 대만은 특히 컴퓨터와 반도체 등 중국이 상대적으로 뒤지는 첨단분야에 일찍 눈을 떠 중국 IT산업 발전에 큰 힘이 될 듯하다.

인근 한반도는 이제 남북간이 교류를 트기 시작했으나 중국과 대만은 일찌감치 경제교류를 전개해왔다. 이미 중국에는 대만의 기업자본이 대거 들어와 있다. 경제 교류는 양국의 정치관계가 개선되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아무리 관계가 악화돼도 경제교류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애쓸 정도로 두 나라 경제협력은 무르익었다.

중국·홍콩·대만을 묶은 중화권의 경제는 한국·일본과 함께 아시아 경제의 중심 축이다. 중화 경제는 이제 첨단산업과 자본을 앞세워 아시아 경제 패권을 쥔 일본을 내치려 한다.

한국? 중국인의 눈으로 보면 일본 타도를 위한 좋은 협력자일 뿐이다. 당장 넘어야 할 산이기는 하나 중국인들의 눈길은 이미 한국 너머 일본과 미국에 가 있다.

거대한 용, 중국의 경제가 용틀임하면서 황사바람이 일고 있다. 그 바람은 서서히 동진(東進)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거쳐 머잖아 태평양을 넘어 미국 땅까지 온 세상을 황색으로 뒤덮을 것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