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3-신경제>해외 신경제-미국

미국 경제가 90년대 들어와 10년째 고속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4·4분기에 8.3%의 성장률로 16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낸 데 이어 전자상거래 거품논쟁이 한창이던 지난 2·4분기에도 미국 경제는 5.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성숙기에 들어선 미국 경제가 10년이 넘도록 매년 4%대의 성장률을 기록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영국이 19세기 연간 약 1%의 경제 성장률로 세계의 산업의 중심이 됐고 미국이 20세기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경제의 승자로 올라섰을 때의 경제 성장률도 2.5%에 불과했다.

그러면 80년대 중반까지 「제로(0) 성장」에 만성적인 무역·재정 적자까지 겹쳐 큰 어려움을 겪던 미국 경제를 다시 한번 세계 최강으로 변모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최근 전세계 경제학자들이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반 대중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도 최근 미국 경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http://www.nyt.com)와 CNN( http://www.cnn.com) 방송을 비롯해 보수적인 언론

으로 유명한 프랑스 르몽드( http://www.le-monde.com), 영국의 BBC( http://www.bbc.co.uk) 방송 등도 모두 최근 미국경제를 해부하는 데 많은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경제·경영 전문지들도 이 대열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http://www.businessweek.com)는 최근호에서 「21세기의 기업」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지칠 줄 모르는 미국 경제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약 80페이지에 달하는 이 특집은 우선 미국 경제가 최근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이는 이유를 정보통신(IT)에서 찾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80년대 이후 꾸준하게 컴퓨터·소프트웨어·인터넷 등에 투자한 결과 미국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이 최근 획기적으로 향상됐다는 것이다.

미국 상무성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투자 중에서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 시설을 확충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60년대만 해도 10% 안팎에 그쳤으나 최근 그 비중이 35%까지 껑충 뛰었다. 특히 최근 통신·보험·증권업 등에서는 IT투자가 전체 설비투자의 80%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투자에 힘입어 미국은 현재 전세계 500대 슈퍼컴퓨터의 약 80%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50%에 육박하는 PC와 인터넷 보급률 등 정보화 정도를 나타내는 대부분의 항목에서도 주요 EU 국가와 일본 등에 비해 2배 이상 앞서 있다.

미국은 또 인터넷 인구와 전자상거래의 절대 규모에서도 EU 등에 비해 월등한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 시장조사회사인 이티포케스트( http://www.etforecasts.com)에 따르면 미국의 인터넷 인구는 지난해말 현재 1억3500만명에 달해 2위를 차지한 일본(2700만명)보다 5배, 3∼5위를 기록한 독일(1900만명), 영국(1800만명), 중국(1500만 명) 등과 비교하면 무려 7∼9배나 더 많다.

미국의 이러한 IT투자가 최근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가장 확실한 바로미터인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지난 95년부터 매년 약 2.5%씩 향상되고 있는 것(그림 3). 이러한 성적은 80년 이후 미국 노동자들의 생산성 증가율이 연간 1∼1.5%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할 때 약 2배나 향상된 것이다.

그 의미는 단순한 수치 이상이다. 미국 경제가 드디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고도 고속 성장을 계속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또 최근 미국 월가 일각에서 저물가와 저 실업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4%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견해와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잠재성장률을 3.5% 안팎으로 추정해왔다. 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3%로 추정됐던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최근 하이테크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최근 미국 경제계에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마디로 완전고용 상태에서 한 국가 경제가 이룰 수 있는 최고 수

준의 성장률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경제 성장률이 그 이상으로 높아지면 그 차이만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최근 미국 경제는 잠재성장률보다도 더 높은 성장을 계속하면서 물가상승률도 최저 수준에 그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20세기말 제2의 산업혁명을 불러온 지식·정보산업이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제현상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해답은 신경제다. 사이버 시장의 각종 프로그램 파일이 대표적인 예다. 보통 물건은 생산을 늘릴수록 생산비가 더 들어가지만 프로그램 파일은 추가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무한정 복제할 수 있다.

이제 지식·정보산업이 20세기 경제학을 대변했던 이론인 「수확체감의 법칙」이 위협받고 있다. 네트워킹 기술의 발달로 시간·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이버 공장」에서는 거꾸로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한다.

기존의 경제학이 도전받기는 국가 경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경제이론으

로는 실업과 물가상승은 서로 반대로 움직였다. 이른바 필립스 커브 이론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실업률이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물가는 더 안정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실업률이 30여년 만의 최저 수준인 3.9%까지 떨어진 가운데 물가상승률도 2%로 실업과 물가걱정이 없는 「경제적 유토피아」를 구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 신경제 이론의 대표주자인 미 스탠퍼드대의 폴 로머 교수는 지식·정보산업 혁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지식·정보 산업에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고용증가로 실업률이 떨어져도 생산성이 그보다 더 높아져 물가상승 요인을 흡수해버린다는 것이다.

더욱이 IT 분야는 앞으로도 한동안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할 정도로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있고 그만큼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비즈니스위크는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IT는 최근 미국의 경제호황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경제호황이 100% IT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의 미국 경제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유연한 노동시장과 선진 금융제도 등의 역할에 대해서도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인도와 구 소련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기술 두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지구촌에서 가장 개방적인 노동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창업자의 아이디어를 믿고 회사설립 단계에서부터 풍부한 투자자금을 마련해준 것은 미국의 최첨단 금융제도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총 500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이것은 지난 90년 실적 20억달러에 비해 25배나 많은 액수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러한 토양이 골고루 갖춰져 있기 때문에 최근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벤처창업 성공 스토리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고 이는 다시 지칠줄 모르는 미국 경제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IT을 근간으로 하는 신경제는 최근 미국에서 그 꽃을 피우고 있는 사실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신경제가 앞으로 전 지구촌에 골고루 그 혜택을 나눠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에 좋은 것이 반드시 다른 나라에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 경제에 약이 되는 것이 다른 나라 경제에 독이 될 수 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신경제 시대는 우선 전 지구촌을 활동무대로 하는 것인 만큼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기업만 떼돈을 버는 반면 나머지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후진국간 격차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우려는 벌써 하나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간 전자상거래

를 통한 무역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어 최근 통상마찰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업체들은 유럽 시장에 약 7억달러에 달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인터넷으로 판매한 반면 유럽업체들의 대 미국 수출은 10분의 1 수준인 7000만달러에 그쳤는데 전문가들은 무역 역조가 앞으로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과 EU 사이에도 이처럼 큰 무역역조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개발도상국가들과의 격차 문제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미국의 USA투데이( http://www.usatoday.com)는 더욱 부정적인 시각을 내놓고 있다. 이 신문은 최근 「전 세계가 최근 미국의 독주를 경계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세계 10대 상표·은행·경영대학원·소프트웨어회사 등을 조사한 결과 미국기업이 각각 6개에서 심한 경우 9개까지 포함돼 있다고 소개하고 미국 경제의 독주현상은 이미 그 도를 지나쳐 치유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최근 신경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도 사실상 「미국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신경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의 결론은 분명하다. 먼저 21세기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주인공은 바로 지식·정보산업이라는 인식을 더욱 분명히 하고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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