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2-디지털문화 대혁명>사이버폭력 이대로 좋은가

인터넷의 대중화는 우리의 생활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일부 계층에만 집중돼 있던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돼 전반적인 지식 수준의 향상을 가져왔으며 각종 경제 활동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면서 생산 및 소비, 그리고 유통 과정이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그 역기능도 증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이버 폭력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사이버 폭력에 대해 사생활 침해, 타인 비방, 명예 훼손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폭력이 물리적 힘에 의한 것이라면 사이버 폭력은 채팅이나 전자우편, 게시판 글 등 주로 언어에 의해 이뤄진다.

일각에서는 사이버폭력에 대해 「아이들 장난」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있지만 이미 사이버폭력의 위험성은 이미 장난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을 좀먹는 사이버폭력>

사이버폭력은 인터넷에 접속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새벽 1시, 상당히 지명도가 높은 모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 실제 접속해봤다. 200여개가 넘는 대화방 중 제대로 된 대화방은 찾기 힘들 정도다. 「설(서울) 사는 고딩(고등학생) 야자(반말) 방」 정도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팔, 막가는 대화방」 「욕하면서 놀 사람 어솨요(어서 와요)」 등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있는 대화방이 쉽게 눈에 띈다.

실제 한 대화방에 들어가자 대화를 하고 있던 6명의 사람들이 일단 반말을 해대며 새로 참가한 사용자를 반겨준다. 하지만 이같은 배려(?)는 오래가지 못한다. 반말과 욕이 섞인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면 곧바로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집중 공격을 당한다.

이처럼 대화방에서 행해지는 사이버폭력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7월 대전 모 중학교 학생이 사이버폭력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대전시 교육청 홈페이지의 사이버 토론방으로 7월 1일부터 15일까지 머리와 옷, 신발 등 학생들의 복장에 관련된 토론방이 개설됐다. 이 토론방에 자살한 학생이 귀고리를 하고 머리를 염색한 것에 대해 험담하는 글이 올라왔고 이로 인해 이 학생은 친구들과 다툼을 벌인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를 선택했다.

개인에 대한 사이버폭력뿐 아니라 집단 대 집단의 사이버 폭력도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집단적 사이버폭력은 연예인 팬클럽 사이에서 벌어진다.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벌 가수에 대해 퍼붓는 비방은 연예인에 대한 애정 차원을 넘어서 극단적 대립을 초래한다. 과거 모 PC통신 게시판에서 H.O.T와 젝키 팬클럽 사이에 벌어진 대립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 공개방송이 끝난 후 물리적 충돌로 이어져 여러 명의 부상자를 낳은 것이 하나의 예다.

정치권이 개설한 홈페이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개설된 정치권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발전적 비판은 사라진 지 오래고 비방과 중상으로 도배돼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욕은 기본이고 정치인의 개인적 사생활을 왜곡한 글도 적지 않다. 특히 이 같은 글은 거의 대부분 익명으로 게재되고 있으며 개중에는 다른 정치인의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민주당의 홈페이지 게시판 관리자는 『욕으로 채워진 글을 삭제하면 자신의 글을 삭제했다는 글이 더 올라온다. 정치권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정도가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이버폭력은 주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게임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실명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IP 추적 등 기술적인 장치로 추적하더라도 가해자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정보범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98년 3건, 작년 10건이던 사이버폭력 신고가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에만 11건이 접수됐다』며 『하지만 자신의 고정 IP를 갖고 있지 않은 가해자를 기술적으로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사이버성폭력은 실제 성폭력으로 발전한다>

「미래는 섹스 곱하기 테크놀로지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제이 제럴드가 한 말이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이버

폭력은 사이버성폭력으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사이버폭력의 가장 많은 형태는 사실에 대한 왜곡이나 특정인의 명예 훼손이 아닌 성을 매개로 한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정진욱 정보사업부장은 성을 매개로 한 사이버폭력, 즉 사이버성폭력에 대해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인 언어나 이미지를 사용해 통신환경을 저해하고 위협적·적대적·공격적인 통신환경을 조성하거나 현실공간의 피해를 유발한 경우, 혹은 성적인 접근이나 제안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적인 은유나 암시로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사이버성폭력은 온라인을 통해 음란한 콘텐츠를 판매하거나 전시하는 사이버음란물 게시, 전자우편이나 채팅을 통해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사이버성희롱, 전자우편이나 인스턴트 메시지 등으로 원치 않는 관심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사이버스토킹, 특정인의 성과 관련된 생활이나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사이버 명예훼손 등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현재 사이버성폭력피해신고센터가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하고 있는 사이버성폭력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61.5%가 온라인상에서 성적인 모욕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 수치는 여성 응답자만을 따로 집계할 경우 더욱 높아져 여성 10대 응답자는 69.3%가, 여성 20대 응답자는 79.8%가 사이버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피해자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73.2%가 사이버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긍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응답자 중 단지 12.2%만이 「신고한다」고 답했으며 50.3%가 「그냥 무시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이버폭력에 대해 그 자체도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으며 실제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이순형 교수가 PC통신 이용자 2168명을 대상으로 사이버성폭력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이버성폭력이 실제 성폭력을 증가시킬 가능성에 대해 응답자의 66.1%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성범죄 증가 가능성에 대해서도 59.6%가 동의했다.

특히 사이버성폭력을 한 후 발생한 성적 욕구에 대해서 실제로 가능한 성 상대와 성행위를 했다는 응답자는 162명(9.2%), 자위를 했다는 응답은 345명(19.7%)에 달해 사이버성폭력으로 가중된 스트레스가 실제 성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점점 확산되는 사이버성폭력에 대해 올바른 대처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차단 소프트웨어 보급이나 처벌 강화 등 기술적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올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이 근본적 치유책이라고 말한다. 또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이버폭력 피해자의 적극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각 인터넷 사업자는 자체적으로 고객 지원실을 마련해 사이버폭력 가해자에 대해 서비스 중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만일 서비스 사업자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사이버성폭력신고센터에 신고하

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이버성폭력피해신고센터는 홈페이지( http://www.gender.or.kr)뿐 아니라 전화(02-3415-0182)로도 사이버폭력 신고를 받고 있다.

<사이버성폭력신고센터가 제시하는 사이버 성폭력 대응방안 10가지>

1. 중성 ID를 사용할 것.

2. 개인정보는 최소한의 것만 기입하거나 개인정보를 제공한 장소를 메모해 둘 것.

3. 상대방을 현실에서처럼 존중할 것.

4. 상대방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지 않을 것.

5. 상대방의 유혹에 반응하지 않을 것.

6. 온라인상에서 만난 사람은 충분히 알 때까지 만나지 말고 만나더라도 공개적으로 만날 것.

7. 원치 않는 전자우편에 답장하지 않을 것.

8. 적대적인 상황이 예측될 경우 그 자리를 떠날 것.

9.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을 배울 것.

10. 피해 발생시나 목격시 즉각 신고센터에 신고할 것.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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