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물자교역, 위탁가공, 남한기업의 북한 현지투자 등을 거치면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북한의 태도 또한 많은 부분 변화가 있어 왔다. 남북경협 초기에는 북한측에서 단순물자 교역이나 인적인 기술교류가 없는 단순 임가공 등으로 제한적인 경협을 추진해 가급적 남북한 주민의 직접 접촉이 있는 경제협력 사업을 기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전기전자, 관광, 건축, 심지어는 인터넷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그 경협의 문호를 점차 개방하고 있으며 특히 남한의 기술자가 북한에 직접 방문해서 기술을 지도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통신과 인적 왕래를 극히 제한하던 초기의 남북경협에 비교하면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또 남한에서 제안되는 경제사업들에 대해 북한 내부에서 검토하고 승인하는 형식의 초기 수동적 자세를 탈피, 최근에는 베이징, 일본 등의 파견조직을 통해 남한에 구체적인 사업을 제안하는 등 경협에 대해 능동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북한이 남한측에 제안하는 사업에서 북한이 선호하는 경협사업의 특징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가장 특징적인 점은 최근 북한에서는 기술이전 및 기술협력이 가능한 사업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이전이 개입되는 경제협력은 북한 사업상대자와의 지속적인 기술교류와 방문을 가능하게 해 상호신뢰와 장기적인 사업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활성화된 남북경제협력 분야에서 북한의 기술력과 이에 대한 활용방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기존의 대북한 위탁가공사업이 의류·봉제 등 현대적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 전기·전자 제품생산, 소프트웨어 합작개발 등 현대적 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점차 전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 당국도 최근 들어 경제의 재건과 첨단산업의 육성을 위한 기술인력 양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금년초 공동사설에서 사상, 총대와 더불어 과학기술을 「강성대국 건설의 3대기둥」의 하나로 규정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전자·정밀기기 등 첨단과학기술, 응용과학기술의 개발·도입에 주력하면서 당면한 경제난 타개를 위한 실용적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제품 분야는 남북한 경제협력 사업에서도 향후 전망이 밝은 분야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올해 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 건설」을 강조하면서 과학기술 중시노선을 내세운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첨단과학기술 분야는 북한당국이 매우 관심을 갖는 대상이다.
북한의 외국인 투자법은 「첨단기술을 비롯한 현대적 기술」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은 제품의 생산부문」 「자원개발 및 하부구조 건설부문」 「과학연구 및 기술개발부문」 등을 투자장려 부문으로 명기하고 있다. 정보기술은 그 자체가 전자부문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면서 북한측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는 분야다.
이렇게 볼 때 북한에서도 경협에 대해 기존의 단순 임가공 수준을 넘어 기술습득이 가능하고 그러한 기술을 응용해 타 산업에 연관시킬 수 있는 사업을 선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술협력이 전제가 되는 사업을 선호한다는 점은 북한 스스로도 뒤떨어진 첨단 산업기술 도입 없이는 독자적인 경제개발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며 남한과 같이 부존자원이 부족한 반면 우수한 기술인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개발모델을 채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술적인 측면과 함께 남한과의 경협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경제재건을 위한 자본 및 경제기반에 대한 투자에 선뜻 나설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서는 남한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남한으로서는 통일비용의 분산과 통일 후 산업구조개편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한과의 경제협력은 북한이 스스로 경제적 자생력을 회복해 경제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준다는 데 그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이 같은 경협에 대한 희망적인 시각과는 달리 북한 내부에서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조심스럽고 그 결과를 보장하기 어려운 사업으로 남아있다. 남한과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북한측으로서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북한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안이 그러하듯이 경협 또한 북한 민간의 개별사안이 아닌 집단적인 고려(내부 정치적·역학적)와 전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관계는 이제 대내외적인 여건으로 볼 때 더이상 상호 폐쇄적이 아닌 상호협력의 차원에서 접근돼야 할 것이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민족경제공동체 실현의 기반을 조성하고 아울러 남북한 모두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야 말로 남북한 경제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주요 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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