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황순원선생님 영전에

그 분의 강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대학 졸업학기 때였다. 중학교 때 「소나기」를 읽고 소설을 써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그 분의 강의를 기다려온 것은 실로 7∼8년 만의 일이었다. 그 분의 「창작연습」 강의는 학생들이 습작소설을 한 편씩 발표하면 이것을 소재로 해서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고, 이어 마지막 몇 분을 강평하는 것으로 채웠다. 날밤을 새워 쓴 작품을 당대 최고의 대가인 그 분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때마침 습작 하나를 써놓았던 필자가 첫 번째 발표자로 지목됐다. 내심 그렇게 되길 바라며 개강 때부터 1주일을 꼬박 새워 완성한 것이었다. 내친 김에 그 분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내년 신춘문예에 응모해 보라』는 격려도 받고 싶던 터였다. 그 것은 그 분이 학생 작품에 대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당시 그 분은 한 일간지의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10년 넘게 맡고 있었다. 물론 그런 극찬을 받는 학생은 몇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로 드물었다.




두 번째 강의시간, 마침내 그 분과 동료학생들 앞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100분짜리 강의중 200자 원고지 90쪽짜리 글을 낭독하는 데만 60분이 흘렀다. 습작을 놓고 학생들과 갑론을박하는데 다시 30분이 흘렀다. 앞서서 복선을 설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우발적인 사건이 자주 등장한다는 식의 지적에서부터 주인공의 캐릭터가 반역사적 반민주적이라는 데까지 백화점식의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필자는 자기방어에 급급하고 학생들은 하나라도 더 필자를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 승리를 거두려는 논리싸움의 성격이 더 짙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 분은 예의 그 투명한 붉은 뺨에 미소를 지어 보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90분 동안을 시종일관하던 그 분이 마지막 10분을 남겨두고 운을 뗐다.




『오늘 아침 텔레비전 방송을 보니까, 아나운서가 「곤색」이라는 단어를 쓰더란 말야. 곤색의 곤이란 일본말 「こん」을 발음한 것이라고. 내 당장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명색이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우리말과 일본말을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뭘 전달하겠느냐고 야단을 쳤지. …각설하고, 언젠가 신춘문예 심사때 당선작 후보 응모작이 하나 있었는데, 이건 숫제 맞춤법이 틀리는 게 태반이야. 창작하겠다는 자세가 안돼 있어. 함께 심사했던 분이 아깝다며 끝까지 밀었는데 나는 반대했어. 결국 다른 작품이 당선됐지.』




그 분은 그 날 강의 끝무렵에 필자의 습작에 대해 단 한마디만을 했다.




『끝머리 쯤에 나오는 「그런대도」는 「그런데도」로 쓰는 게 맞는 거야, 「그런대로」와 혼동하면 안돼.』




칭찬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극적인 「원 포인트 레슨」을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창작연습 강의는 한 학기 동안 내내 그렇게 맞춤법과 우리말 바로쓰기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졌다. 다수의 학생들이 그런 강의에 실망하고 재미없어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학생들은 그 분위기와 위엄만으로도 강의를 듣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며 그 분에 대한 속마음을 비치기도 했다.




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에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경구가 있다. 그 분이 졸업을 앞둔 국문과 학생들에게 전해주려 했던 메시지가 바로 이 경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필자가 대망의 꿈을 안고 기자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였다. 남보다 한발 앞서겠다는 글 욕심으로 달아오를 때마다 그 분의 창작연습 아니, 맞춤법과 바른말 쓰기 강의시간은 또렷한 채찍이 되어 가빠진 숨을 고르게 해주곤 했다.




그제, 그 분이 다시는 찾아뵐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 하시며 평생 동안 「허튼 글」은 멀리하셨던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이셨던 그 분. 황순원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명목을 빈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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