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90년대 들어 10년째 4% 이상의 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은 1∼2%에 그쳐 사상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만성적인 무역 및 재정적자까지 겹쳐 큰 어려움을 겪던 미국 경제를 다시 한번 세계 최강으로 변모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미 텍사스 오스틴대 앤드루 윈스턴 교수(경제학)는 그 이유를 「정보통신(IT) 및 지식 산업」에서 찾는다. 그는 지난 97년 미국의 신경제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전자상거래 경제학(더 이코노믹스 오브 일렉트로닉 커머스)」을 펴낸 저자로도 유명하다.
윈스턴 교수(64)는 또 텍사스 오스틴대학이 지난 95년 설립한 전자상거래연구소장을 맡아 지금도 인터넷과 경제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윈스턴 교수를 직접 만나 신경제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 배경과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최근 전세계 매스컴에서 「신경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먼저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자상거래 경제학」의 저자로서 신경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신경제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기존의 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 현상을 의미하는만큼 이를 설명하는 방식도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내가 전자상거래 경제학을 집필하던 97년까지만 해도 신경제보다는 디지털 경제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최근에는 특히 매스컴에서 신경제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신경제에 대한 정의도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새로운(신) 경제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기존의 경제학은 물건의 생산량을 늘릴수록 생산비가 더 드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IT 및 지식 산업에서는 이와 180도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한번 개발하면 추가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무제한으로 복제할 수 있다. 「사이버 공장」에서는 거꾸로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한다.
또 기존 경제학에서는 실업과 물가상승도 서로 반대로 움직였다. 예를 들어 성장률이 높아져 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는 반대로 상승해야 옳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필립스 커브」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물가상승률도 2% 수준에 머물러 실업과 물가걱정이 없는 경제적 유토피아를 구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IT 및 지식 산업에서는 고용증가로 실업률이 떨어져도 생산성이 그보다 더 높아져 물가상승 요인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경제가 유독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 배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미국 기업들이 80년대 이후 꾸준하게 컴퓨터·소프트웨어·인터넷 등에 투자한 결과 미국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이 최근 획기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의 투자 중에서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 시설을 확충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60년대만 해도 10% 안팎에 그쳤으나 최근 그 비중이 35%까지 껑충 뛰었다. 특히 최근 통신·보험·증권업 등에서는 IT 투자가 전체 설비투자의 80%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투자에 힘입어 미국은 현재 전세계 500대 슈퍼컴퓨터의 약 80%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50%에 육박하는 PC와 인터넷 보급률 등 정보화 정도를 나타내는 대부분의 항목에서도 주요 EU 국가와 일본 등에 비해 2배 이상 앞서 있다.
미국의 이러한 IT투자가 최근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가장 확실한 바로미터인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지난 95년부터 매년 약 2.5%씩 향상되고 있다. 이러한 성적은 80년 이후 미국 노동자들의 생산성 증가율이 연간 1∼1.5%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할 때 약 2배나 향상된 것이다.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신경제가 앞으로 전 지구촌에 골고루 그 혜택을 돌려줄 것으로 생각하는가. 모든 기업들이 전 지구촌을 무대로 경쟁하는 신경제에서 선진국과 후진국간 격차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좋은 지적이다. 신경제 상황에서는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기업만 떼돈을 버는 반면 나머지 기업들은 대부분 생존을 걱정해야 함으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거대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경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낙관해도 좋을 것이다.
-한두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지난해 전세계 10대 소프트웨어 업체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라클을 포함해 7개 회사의 국적이 미국이다. 미국 이외 업체로는 독일의 SAP와 일본의 후지쯔, 히타치 등이 있지만 역시 여러 면에서 역부족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 회사 제품이 대부분 인도에서 개발된다는 점이다.
인도에서는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사티암테크놀로지를 비롯해 타타와 마힌드라, BPL그룹 등 전통적인 굴뚝산업 기업들도 모두 최근 전자상거래 관련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생산 기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인터넷 회선을 통해 음성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VoIP 분야에서는 전세계 시장을 보칼텍, 델타스리컴, 오디오코드 등 이스라엘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시스코시스템스와 노텔네트웍스 등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은 물론 AT&T, 도이치텔레콤 등 통신 거인들도 VoIP 분야의 원천기술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최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정도다.
-결국 신경제가 빈부격차에 미치는 영향도 이러한 환경을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30여년 동안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최근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신경제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화제를 한국 경제로 옮겨보겠다. 지구촌을 통합하는 신경제 환경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하는가.
▲개인적으로 한국에는 학회참석과 제자들도 만나기 위해 1년에 한번 정도 방문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왔을 때 『테헤란밸리에도 돈이 넘친다』는 말을 듣고 전지구촌을 뒤덮었던 인터넷 투자 붐을 실감했다. 올해 다시 와보니 인터넷 열기는 조금 가라앉은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인터넷산업 기반은 PC와 이동전화 보급 등에서 이미 아·태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국가 중에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 나도 한국이 90년대 들어와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첨단 IT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노력이 이제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새로운 국제 경제환경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사실 국내에도 97년 통화위기(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이 신경제 덕분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IT가 최근 미국의 경제 호황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경제호황이 100% IT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미국 경제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유연한 노동시장과 선진 금융제도 등의 역할에 대해서도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 또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창업자의 아이디어를 믿고 회사설립 단계에서부터 풍부한 투자를 하는 것도 미국의 최첨단 금융제도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 벤처캐피털 회사로부터 총 500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이것은 지난 90년 실적 20억달러에 비해 25배나 많은 액수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러한 토양이 골고루 갖춰져 있기 때문에 최근에도 벤처창업 성공 스토리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미국을 「신경제의 모범답안」이라고 평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도 많다.
-외국 사람의 평가는 더 객관적이다.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국제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한국 교수들은 대부분 『과도한 수업 부담 때문에 연구를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또 65세만 되면 정년 퇴직하는 제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나이 올해 64세지만 아직 연구를 떠난 생활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소한 문제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다. 신경제와 디지털 경제는 지식을 먹고 자라는 산업이다. 한국이 아무리 IT와 인터넷에 투자를 많이 해도 21세기 신경제의 알파요 오메가인 지식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현재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최근 「인터넷 경제 : 기술 및 응용(Internet Economy:Technology and Applications)」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다시 한번 인터넷에 매료됐다. 주요 내용을 학교 홈페이지( http://crec.bus.utexas.edu)에 공개한 후 책의 독자들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앤드류 윈스턴 교수 소개>
「전자상거래 경제학」의 저자로 유명한 윈스턴 교수(경제학)가 미시간대에서 경제학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53년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석·박사 과정은 카네기멜런대에서 마쳤다(62년). 전공은 이론 경제학.
그는 그후 퍼듀·버지니아·예일·캘리포니아주립대와 홍콩 과학기술대 교수를 거쳐 마침내 90년대초 텍사스 오스틴대 종신 교수(Tenure)가 됐다. 현재 공식 직책은 오스틴대학의 정보시스템, 경제, 컴퓨터 과학부 교수이면서 전자상거래연구소장도 겸하고 있다.
그동안 윈스턴 교수를 소개하면서 그의 연구성과가 집대성된 수십권에 달하는 저서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미 대학가에서 경제학 교과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전자상거래 경제학 외에도 △전자상거래 관리자를 위한 가이드(Electronic Commerce:A Manager’s Guide) △인터넷에서 돈버는 법(Making Money in Internet) △전자상거래의 개척자들(Frontiers of Electronic Commerce) △인터넷 경제:기술 및 응용(Internet Economy:Technology and Applications)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서 전자상거래 관리자를 위한 가이드는 국내에도 번역·소개됐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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