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실리콘밸리」.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간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통일 기반을 조성하자는 다양한 논의가 한창이다.
남북 양측이 구체적인 수익을 실현하고 기업성장과 국가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실질적인 남북 경제협력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첨단 정보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을 기반으로 새로운 남북 교류역사를 창조할 「단둥-신의주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밸리(약칭 신의주SM밸리)」가 남북 공동으로 추진된다.◆
분단 50년 만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신의주SM밸리는 남한의 기술 및 자금력과 북한의 우수한 IT인력의 효율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어 한민족의 잠재능력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다.
신의주SM밸리는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 단둥(丹東)을 하나로 묶어 국제적인 소프트웨어 및 멀티미디어 개발단지로 조성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즉 남한과 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 미국 등의 IT기업들을 입주시켜 동북아 최대의 IT산업 요람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또한 입주 업체들에는 수준 높은 북한의 IT인력을 공급하고 중국 및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수행케 한다는 것이 기본 구상이다.
신의주SM밸리 추진을 위해 남과 북은 각종 교육시설과 부대시설, 연구개발 공간을 확보하고 전력·통신시설 등 기본 인프라와 인터넷 전용선, 컴퓨터 및 서버 등 각종 하드웨어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에는 IT인력의 활용과 육성, 이를 통한 외화획득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IT는 어떤 수준일까.
아직까지는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 없지만 최근 북한의 IT 수준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 가운데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계산용 프로그램 작동 수준은 서구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친선 농구경기 후 북한은 컴퓨터로 경기를 분석, 남한측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을 방문한 남한측 인사들은 북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메카로 불리는 조선콤퓨터센터(KCC)에서 최첨단 기술로 알려진 문자, 음성, 지문인식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조선콤퓨터센터에는 현재 20∼30대 젊은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4500여명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도구 측면에서 북한은 90년대 중반 이후 비주얼베이직·자바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워드프로세서 기술수준은 남한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남한에서도 잘 알려진 도스 기반의 조선어 워드프로세서 「창덕」을 비롯해 최근에는 윈도95 기반의 「단군」을 개발하기도 했다. 운용체계의 경우 북한은 남한의 한글도스 3.30의 개발시기와 비슷한 지난 89년 조선어도스 3.30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 90년부터 매년 전국 프로그램 경연 및 전시회를 열어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을 발굴하는 한편 북한 실정에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소프트웨어 분야를 제외하고 하드웨어와 인터넷 분야는 별다른 특징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드웨어의 경우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인민대학습당, 김일성대학 및 김책공업대학 전자공학부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보급되고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인터넷 역시 국제 인터넷기구가 부여한 국가 코드인 「.kp(남한의 .kr에 해당)」를 사용하는 도메인이 공식적으로는 단 한 개도 없는 것으로 보아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 하드웨어와 인터넷 분야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초고속 통신망과 고성능 컴퓨터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 미국이 대공산권수출규제위원회(COCOM)의 이름으로 고성능 컴퓨터 등 전략물자에 대한 유입을 통제하고 있어 정보통신 기술의 습득이나 활용이 공식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본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가 전 분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보유한 소프트웨어 분야의 유효인력은 대략 5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신의주SM밸리는 바로 북한의 이 같은 상황을 십분 감안, 결과적으로 남북 모두가 이득이 될 수 있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신의주SM밸리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우선 남한에서는 고질적인 IT인력 부족난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개별 기업들 입장에서도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는 북한 고급 IT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이나 동남아지역 국가 진출이 대부분 실패로 끝난 것도 바로 언어소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COCOM규제로 기술발전에 제약을 받고 있는 북한측 역시 남한 기업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선진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남한 기업들의 북한 인력 수용은 또한 북한의 경제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한 기업의 기술 및 자금과 북한 인력이 결합하게 될 이 같은 형태의 교류사업은 특히 남북간에 크게 벌어져 있는 정보화 수준의 격차 줄이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신의주SM밸리 계획은 궁극적으로 민족사업 또는 통일사업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한편 신의주SM밸리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요인으로는 입지적 조건을 빼놓을 수 없다.
단지의 중심지역이 될 신의주와 단둥은 지형상으로 동북아 중심에 위치해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두 지역은 육해상 교통이 모두 발달한 국경도시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남북한과 중국 그리고 동북아시아 각국이 IT분야 인력과 정보를 교류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신의주의 경우 수도 평양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사기지 밀집지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이 취하고 있는 이른바 점분산형(點分散型) 개방지역 후보에서 언제나 1순위로 꼽혔던 도시다.
신의주는 또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밀집지역으로 IT인력 조달이 용이하고 관련 산업에 대한 마인드가 조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전력사정이 가장 양호한 곳도 신의주다.
이처럼 신의주SM밸리는 IT분야에서 우리민족이 장차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신의주SM밸리는 5000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민족의 잠재된 능력과 역량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떨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신의주〉
평안북도 압록강 하류 유역에 위치한 신의주는 동쪽은 의주군·피현군, 남쪽은 용천군, 서쪽 및 북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접하고 있다.
교통은 중국을 잇는 국제철도가 압록강 철교를 지나며 평의선(평양-신의주)의 종착지다.
덕현선과 백마선 등 철도가 지나며 평양·의주·피현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신의주에는 차광수대학·관서대학·양실대학·만풍대학을 비롯한 70여개 학교 및 교육기관이 있다.
신의주와 용천을 잇는 신의주공업지구는 압록강을 공업용수로 활용하고 있고 수풍발전소와 천마발전소에 인접해 전력공급이 유리하다.
북한 유일의 디젤엔진 공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주요 업종은 화학·기계·제약 등이다.
〈단둥〉
중국 랴오닝성 남동쪽에 있는 도시로 압록강 어귀에서 상류쪽 약 35㎞ 지점으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다.
20세기 초반 선양과 연결되는 철도건설로 이 도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됐다. 이 철도건설로 단둥은 만주지방 생산품의 중요한 수출항구가 되었다.
지난 1933년 산업개발의 중심지로 계획돼 개발되기 시작해 섬유, 제지 및 펄프 공장이 설립된 49년 이후 산업 성장을 계속해 현재는 화학공업을 비롯, 중공업분야 등으로 산업구성이 다양해졌다. 현재 선양을 잇는 선단고속도로가 건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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