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과 고객간 전자금융거래 표준약관을 제정하려다가 해킹사고의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란을 벌인 끝에 이를 무산시킨 일이 발생했다.
공정위는 결국 개별은행의 전자금융거래 약관조항에 해킹사고시 보상책임을 담도록 시정명령을 내리는 선으로 물러섰다.
어찌보면 정부의 강제적인 표준약관 마련방침에 대한 은행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 소소한 사건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은 온라인을 사용하면서도 오프라인적 관행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사고, 또는 온라인을 이용하면서도 이에 부수된 책임을 회피하는 사고의 단면을 잘 드러내 보여준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 단순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에 따른 오프라인과 온라인간 연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살펴볼 수 있다.
눈을 돌려 이에 대한 시각을 국가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기업쪽에 확대 대응시켜 보면 그 영향력과 부작용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는 신경제와 관련한 우리의 법제도가 제때 올바르게 적용되고 시의적절하게 규
정, 정비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의 날씨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급변하는 신경제의 흐름을 굳이 이같은 카오스 이론을 들어 비유하지 않더라도 「초기 정책지원 대응의 차별성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신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은 지난 2년 동안 급류를 타고 전개돼 왔으나 법제도적인 지원노력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올 하반기에 접어들어 정부차원의 다양한 신경제·신산업 관련 정책·제도적 연구성과와 보완책을 통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전자상거래(EC) 관련 산업촉진대책, 벤처·인터넷기업 및 코스닥 활성화 정책, 생물산업 관련법안의 마련, 디지털전자와 광산업 중심의 신산업 육성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다양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상황변화를 담아낼 새로운 제도라는 바구니 마련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우리의 경우 비록 신경제를 지원하는 벤처·인터넷기업 지원책, 코스닥 지원책, 생물산업 관련 입법안 마련 등의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업들의 갈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 신경제·신산업 기반의 정책활성화 속에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는 전문인력의 양성, 사이버경제에 대응한 법제 마련, 생물산업 육성 진작책 마련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우수한 인력확충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신경제의 윤활유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미 올초 정보통신산업 분야의 「10만 양병론」이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뒤늦게 이러한 점에 눈뜬 정부도 정부차원에서 세계적인 정보통신의 메카인 미국의 스탠퍼드대학 카네기멜론대와 교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달중 전자상거래관리사 시험을 통해 인력도 배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력양성책이 단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고급인력을 육성해 낼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인 신경제 산업분야인 EC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영에 대한 이해는 물론 엔지니어 수준의 기술력까지 겸비한 한명의 창조적인 소수가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AIST의 이재규 교수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전자상거래(EC)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EC의 솔루션을 설계할 수 있는 정도의 엔지니어적 능력과 산업공학 및 경영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이버경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경제관련 법제도의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앞서의 예처럼 은행들이 디지털시대의 업무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이들의 생각을 앞질러 법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다.
자연히 전자거래와 관련한 오프라인 차원의 다양한 거래관련 법제도 마련의 필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확산의 전제가 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인 만큼 재정경제부·산자부·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함께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에 의한 경제활동시 기존 어음유통 관행에 익숙한 오프라인 사고방식의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소한 디지털경제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소위 전자어음을 관리하는 기구를 조직할 계획을 내년중 세울 계획이지만 이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실시돼 단계적으로 시장에 흡수될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비롯해 사이버거래에 따른 다양한 분쟁사례별 법적 대응책 마련 등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사이버상의 거래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분쟁의 사례에 대비해 전가거래분쟁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의 조정내용이 전자거래기본법에 의한 법적 구속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까지는 아직 1년 이상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생물산업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육성책 마련도 과제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 7월 인체유전자의 해독발표로 전세계가 경악한 가운데 이같은 성과가 정보통신의 지원없이 나올 수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성과는 슈퍼컴퓨터라는 컴퓨터산업의 결정체 없이는 나올 수 없었던 성과다. 지난 90년 나온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주라기공원」에서는 슈퍼컴 3대가 유전염색체를 바탕으로 공룡을 재현하는 데 사용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정책입안자들에게 정보통신산업과 생물산업간 접목의 중요성과 함께 관련 법규지원책의 필요성을 시사해 주고도 남음이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 정책적 지원을 받기 위해 벤처의 허울만 쓰고 있는 기업들이 자연도태될 수밖에 없는 더욱 강력한 정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리고 있다. 정부의 벤처육성정책에 편승해 알맹이 없는 기업들이 벤처육성책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건강한 벤처의 성장을 저해하는 독소에 비견된다. 정부가 신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다각적 대책을 모색하면서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 기업을 대상으로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벤처기업으로 대변되는 신경제·신산업의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은 이밖에도 많은 제도적 문제점과 보완점을 숙제로 안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출발선상에 선 우리 정부의 정책이 보다 충실해 지길 기대하는 벤처기업인의 마음과 정책당국자의 신경제 육성의지만은 일치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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