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2-디지털문화 대혁명>디지털문화의 명암

인터넷·PC게임·핸드폰·디지털TV방송·MP3 등 수많은 디지털 문화가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 생활은 이제 디지털과 떨어져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디지털 문화는 인류에게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창조와 자유를 가져다줄 「축복의 선물」이 되는가 하면 인간소외와 가치의 혼돈을 몰고올 「저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디지털 문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긍정이었다가 또는 부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문화 자체가 획일성이나 흑백논리적인 판단을 거부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토양에서 형성됐고 또 발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18세기 산업혁명은 생산기반을 대량생산체제로 바꾸었지만 물질적인 풍요에 기반한 대중문화가 형성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능해졌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전제된 20세기 대중문화는 정치적·경제적 논리에 의해 통제 가능했으며 산업적인 변화에 종속적인 관계를 가져왔다. 대부분 산업적인 변화가 이뤄진 뒤 문화적 변화가 뒤따랐기 때문에 산업을 통제함으로써 문화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고 문화현상의 명암도 대체로 명백했다.

반면 20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디지털 혁명은 산업이 문화를 이끄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혁명 이전에는 물리적인 산업기반이 형성되고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요건이 충족돼야만 문화가 형성됐지만, 디지털 혁명 이후에는 문화 콘텐츠와 문화현상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는 디지털 산업이 물리적인 기반 없이도 성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결국 디지털 문화가 곧 디지털 산업인 셈이다.

이러한 디지털 문화가 부정적인 측면으로 방향을 잡아나가고 악순환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든다면 디지털 산업도 붕괴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 문화는 동일한 하나의 현상에도 선과 악이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이 존재한다.

한 네티즌의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그는 보고서 작성을 위한 자료를 찾던 중

누군가의 홈페이지에서 입맛에 맞는 자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위해 인터넷 채팅을 즐기던 중 게임 소프트웨어와 MP3 음악파일이 있는 사이트의 정보를 입수한 뒤 그 사이트에서 몇개의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친구 홈페이지 자료실에도 이 파일들을 올려줬다. 다시 웹서핑을 즐기던 중 어떤 게시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욕설로 비난하는 글을 읽자 똑같은 욕설로 답변 글을 올려놨다. 그리고 받아놓은 자료를 이용해 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인터넷 사용자라면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정보의 공유와 지적재산권 보호문제가 숨겨져 있으며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익명성으로 보호되는 언어폭력의 난무라는 양면성이 내포돼 있다.

디지털 문화의 밝은 면에는 평등성·개방성·다양성, 멀티미디어, 지식과 정보의 재활용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문화형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평등성의 경우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이버 세계속에서는 70세 노인이나 7살난 어린아이까지 ID만으로 존재한다. 또 정상인이나 신체적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장애인에게도 평등할 뿐만 아니라 나이나 지위·직업 등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는 이상사회에서나 존재할 법한 평등성이다.

디지털 문화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정보의 개방성이다.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정보가 전달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 대해 정보전달의 기회가 열려 있으며 누구나 그 정보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디지털화된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확산되고 누구에게나 개방적이다. 또 이미 공개된 디지털 상태의 지식과 정보는 재활용을 통해 추가적인 확대재생산이 가능해진다.

다양성도 디지털 문화의 순기능이다. 디지털 문화는 다양한 계층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줌으로써 여러가지 형태의 시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보를 생산·유통시키는 것이 손쉬워졌으며 타인이나 다른 집단의 주장에 대해 같은 형태의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멀티미디어화는 정보와 지식의 확산을 돕는 요소 중 하나지만 표현방식의 다양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이는 과거 멀티미디어에 기반한 정보나 지식을 제작하는 것이 전문가 또는 특정인의 전유물이었으나 디지털 문화시대에는 누구에게 가

능해진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문화형성은 특정한 문화현상이 지역적이거나 특정집단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구 반대쪽의 누군가와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기거나 채팅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며 지구상 어느곳에 있는지도 모를 웹서버에서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흡수할 수 있다. 또 재택근무·전자상거래 등을 통해서는 불필요한 이동을 최소화하며 저비용·고효율의 생산성을 가질 수도 있다.

반면 디지털 문화속에서 발생하는 순기능은 거울속에 비친 모습처럼 대칭적인 양면성을 갖고 있으며 때때로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디지털 문화가 갖는 평등성은 사이버 세계안에서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ID로 존재한다는 것으로 몰인격화와 익명성에 의한 폭력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성의 보호장벽안에 있는 존재는 타인에 대한 비판이나 자신의 의사표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는 그릇된 여론형성을 유발시키며 여기에 탁월한 컴퓨팅 능력이 결합된다면 악의적인 해킹으로 발전된다.

또 정보의 공유는 디지털문화의 사용자가 아닌 소비자만을 양산해내며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침해를 배제할 수 없다. 누군가와 정보 또는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얻은 만큼의 지식이나 정보를 공개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형성될 때 정보의 공유가 가능해지고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문화 사용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디지털 문화의 소비자만이 존재하다면 정보의 공유가 불가능해지고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지적재산권을 훔치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CD수준의 음질을 지닌 MP3파일이 저작권자의 동의없이 유포되고 고선명(HD)TV 수준의 화질과 음질을 제공하는 영화 DVD가 불법복제된다면 최초의 창작자는 재생산을 위한 수익의 창출이 불가능해진다.

디지털 문화의 개방성과 익명성은 음란물 확산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동성을 가진 정보전달 매체는 책이나 비디오테이프 등에 불과했고 어떠한 형태로든 물리적 접촉이 우선돼야 했다. 하지만 네트워크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디지털 문화에서는 물리적인 접촉없이 정보의 전달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정보의 소비자가 성인인지 또는 청소년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디지털 문화의 특징은 다른 지역의 저질문화가 아무런 여과과정 없이 유입될 수 있으며 다른 문화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보다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현상만을 추구하는 껍데기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문화가 선과 악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나 산업과 생활의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도도히 밀려오는 디지털의 물결을 거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정부와 산업계, 네티즌 등 모든 계층이 디지털 문화의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발전가능성을 높여 나가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강재윤기자 jy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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