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1-대통합시대>생존위한 기업간 동맹

최근 몇년새 전세계적으로 인터넷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인터넷 하나면 뭐든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지 오래다. 사실 초기 인터넷시장을 선도하던 닷컴기업들이 기업을 공개하고 그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의 위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인터넷 붐 속에서도 일각에서는 닷컴기업에 대한 거품론도 조심스럽게 자라났다. 미국·영국 등 인터넷 선진국에서 초기에 막강한 브랜드파워와 시장 선점효과를 누리면서 잘 나가던 닷컴기업들이 자금난에 부딪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이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벤처 특유의 반짝이는 사업 아이디어와 가벼운 몸집, 강력한 추진력은 인터넷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고 국내외 수많은 벤처캐피털업체들과 개미군단의 투자관심을 끌었다. 닷컴기업은 대다수가 이들로부터 상당액의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 투자자금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익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매출과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 대가도 지불해야 하지만 튼튼한 수익기반을 통해 더 큰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업체들이 알게 모르게 문을 닫거나 사라지고 또 많은 업체들이 새로 간판을 내걸고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꿈의 황금어장(?)」에 도전하고 있다. 「생」과 「멸」의 반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가차없이 도태되는 자연의 「정글의 법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더 큰 시장, 또 한번의 도약을 하는 데는 인터넷사업, 즉 온라인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온라인사업이나 오프라인사업 하나만으로는 「절름발이」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온라인사업과 오프라인사업은 대결구도보다는 함께 융합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해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대세다. 따라서 이같은 분위기는 점차 성숙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야후코리아의 염진섭 사장은 『진정한 인터넷 기업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단지 인터넷 적응기업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막강하고 효율적인 실물 인프라를, 오프라인은 실시간 양방향 마케팅을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을 서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경제에서는 오프라인도, 온라인도 결국 시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다만 오프라인의 비중은 줄고 온라인시장의 비중은 높아지기 때문에 경제의 중심을 이루게 될 인터넷비즈니스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담보해내는 유일한 길이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은 허물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인터넷비즈니스를 얘기할 때 가장 대표적인 업체로 꼽히는 미국 아마존의 경우 대형 창고 짓기에 열중이다. 온라인 주문을 받아 좀더 빨리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물류기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오프라인업체인 반스앤드노블은 모든 주문을 온라인화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고 있다. 결국 목적은 같다. 고객서비스를 좀더 높이기 위해 온라인으로 시작한 아마존은 물류창고를 지으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려 하고 있고, 반스앤드노블은 오프라인기반에 온라인을 보강함으로써 파고를 헤쳐 나가려 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반쪽과 반쪽이 만나서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문제는 속도다. 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장 빨리, 그것도 효율적으로 통합해 내느냐가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IT산업에는 소위 무어의 법칙이 인정돼 왔다. IT제품의 성능은 해마다 2배 이상씩 개선되며 가격은 이전 제품과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터넷비즈니스의 속도는 무어의 법칙을 훨씬 능가한다. 인터넷의 1개월은 오프라인의 6개월에 버금간다는 말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지금은 인터넷 3개월이 오프라인의 3년에 해당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이는 온라인업체들이 온라인의 발전속도에 맞춰 오프라인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또한 오프라인업체는 온라인업체들의 성장속도를 쉽게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온오프라인의 통합이다. 올초에 있었던 미국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외업체들은 대부분 온오프라인의 통합을 예상은 했지만 그 주인공이 AOL과 타임워너라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이상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거대 기업간의 합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AOL과 타임워너는 그동안 각각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확충을 위해 남모르게 총력을 기울여 왔다. 양쪽 모두 독자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보완하는 데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며 더욱이 비즈니스 속도에 걸맞게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양사의 합병은 이같은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 줄 최선의 해결책이자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받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양사의 전격적인 합병은 이제 세계시장 경쟁이 온오프라인의 대통합으로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해 준다.

즉 온오프라인의 통합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유력업체들간 전략적 제휴나 합병이 잇따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거대기업군이 탄생해 세계시장이 이들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같은 커다란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경쟁력을 잃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상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양사의 합병은 오프라인업체에든 온라인 업체에든 통합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21세기 디지털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처럼 온라인기업이 오프라인기업을 인수한 사례와는 반대로 오프라인기업도 온라인기업의 인수를 통해 성공의 지름길을 택하고 있다.

미국의 군수업체 텍스트론의 경우 올초 기업간(B2B) 전자상거래업체인 세이프가드 사이언티픽의 주식 2%를 인수하는 데 1억달러를 투자했다.

회사가치 110억달러에 이르는 전통적 굴뚝업체인 텍스트론이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신생 인터넷회사인 세이프가드에 거액을 투자한 이유는 「시간」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텍스트론의 레위스 캠프벨 사장은 『우리는 더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자상거래분야에서 최근 쏟아지고 있는 신기술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 회사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며 투자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역시 온라인의 발전속도에 오프라인을 맞춰 나가기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같은 목적으로 불고 있는 해외의 온오프라인 통합 바람은 이미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온오프라인이 합해지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완성체가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그 첫번째가 오너십 경영체제다. 온라인업체든 오프라인업체든 국내기업들은 오너십을 유지하고 고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때문에 경영권에 변화가 생기는 합병은 좀처럼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굳이 합병이 아닌 인수나 매각도 쉽사리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인수나 매각의 필요충분조건이랄 수 있는 기업가치 평가기준조차 모호한 게 국내 실정이다.

또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기초자료도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한 M&A도 국내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하다. 세계 경제는 국내기업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온라인업계가 그러했지만 온오프라인이 통합하는 새로운 시대에서도 1등이 아니면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시장분석가들의 조언이다.

따라서 국내기업들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통합이라는 거대한 대세에 거슬러 난파당하지 않으려면 그 물결의 흐름을 제대로 타고 속도를 높여 나가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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