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등장은 산업계의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순수 인터넷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남기는 닷컴기업의 등장과 함께 오프라인기업의 온라인화작업으로 기업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닷컴기업은 콘텐츠, 즉 비트(bit)로 구성된 디지털상품을 가공하고 이를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하는 것이다. 오프라인기업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상품을 생산·판매하는 것이라는 인터넷을 도구로 활용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이같은 경계선은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막강하고 효율적인 실물 인프라를, 오프라인은 실시간 양방향 마케팅을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을 서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디지털경제에서는 오프라인도, 온라인도 결국 시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다만 오프라인의 비중은 줄고 온라인시장의 비중은 높아지기 때문에 경제의 중심을 이루게 될 인터넷비즈니스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담보해내는 유일한 길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이 오프라인상에서 물류센터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과 오프라인에서 세계 최대 서적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반스앤드노블이 온라인을 통해 책을 판매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좋은 예다.
문제는 속도다. 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장 빨리, 그것도 효율적으로 통합해내느냐가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IT산업에는 소위 수확체증의 법칙이 인정돼 왔다. IT제품의 성능은 해마다 2배 이상씩 개선되는 데 비해 가격은 이전 제품과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터넷비즈니스의 속도는 수확체증의 법칙을 훨씬 능가한다. 인터넷의 1년은 오프라인의 7년에 버금간다는 말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지금은 인터넷 3개월이 오프라인의 7년에 해당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온라인업체들은 온라인의 발전속도에 걸맞게 오프라인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또한 오프라인업체는 도저히 온라인업체들의 성장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이같은 속도의 문제는 최근 생각의 수준에서 의지의 수준으로 변해가고 있다. 생각과 동시에 실행하는 「Fast Foward」에서 의지와 동시에 실행하는 「Fast Will」의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온오프라인 통합이다.
◇세계적인 조류=AOL과 타임워너는 그동안 각각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확충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양쪽 다 독자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보완하는 데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며 더욱이 비즈니스 속도에 걸맞게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올초 세계 최대의 합병이라는 역사를 남겼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양사의 전격적인 합병은 이제 세계시장 경쟁이 온오프라인의 대통합으로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해 준다. 즉, 온오프라인의 통합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유력업체들간 전략적 제휴나 합병이 잇따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거대기업군이 탄생해 세계시장이 이들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으로 촉발될 세계 시장경쟁의 변화는 발아기에 있는 국내 인터넷기업이나 온라인에 걸음마를 하고 있는 오프라인업계 양쪽 모두의 생존과 발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AOL과 인터넷에서 자동차 판매를 위한 마케팅 제휴를 발표했고 또 자동차업계 2위 업체인 포드자동차도 현재 AOL과 최대 경쟁회사인 야후와의 마케팅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포드는 또 지난해 10월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휴를 맺어 MS의 「카포인트」 웹사이트에서 자사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다.
인터넷사업에 대한 IT업체들의 관심은 그 차원을 달리 한다. 특히 전세계 IT산업을 좌지우지하는 MS·인텔·오라클 3사는 인터넷회사와 공동마케팅을 위한 전략적 제휴와 함께 아예 자신을 인터넷회사로 탈바꿈시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MS는 최근 미국의 유명한 전자제품 유통체인인 라디오색과 인터넷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 회사 웹사이트인 라디오색닷컴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또 미국의 고속인터넷 및 통신업체인 텔리전트와 퀘스트·넥스텔·AT&T·로드러너·NTL, 한국의 두루넷·한솔엠닷컴, 대만의 기가미디어 등 국적을 불문하고 대규모 자본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MS가 지난 1년 동안 전세계 인터넷관련 회사에 쏟아부은 투자금액만도 족히 100억달러를 상회한다.
또 오라클은 지난해 전자상거래컨설팅업체로 유명한 에이전시닷컴과 iXL·새피언트·US인터액티브·바이언트 등 20개 인터넷업체들과 각각 자본투자를 포함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인텔도 지난 1년 동안 전자상거래관련 반도체 및 인터넷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데 약 60억달러를 투자했는데, 인텔이 생산시설 확충보다 다른 회사 M&A에 더 많은 투자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통업계도 최근 인터넷회사들과 주로 공동마케팅을 목적으로 한 전략적 제휴를 잇따라 맺고 있다. 우선 미국 최대 할인점인 월마트와 미국 2위 전자제품 소매체인업체인 서킷시티가 각각 최근 AOL과 공동마케팅을 벌이기 위한 제휴를 발표했다.
이처럼 기존의 오프라인업체들이 최근 신생 인터넷업체들과 잇따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배경으로는 우선 연합전선을 구축함으로써 상대방의 고객을 자신의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군수업체인 텍스트론은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EC) 업체인 「세이프가드 사이언티픽」의 주식 2%를 인수하는 데 무려 1억달러를 투자했다. 이들의 제휴는 AOL와 타임워너의 「메가 딜」에 묻혀 일반인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온오프라인기업들의 최근 「짝짓기 열풍」을 이해하는 데는 모범적 사례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회사가치가 110억달러에 달하는 전통적 제조업체인 텍스트론이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신생 인터넷회사인 세이프가드에 거액을 투자한 이유는 「시간」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밖에 없다.
레위스 캠프벨 텍스트론 사장은 『우리는 더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최근 쏟아지고 있는 신기술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 회사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말로 이 회사에 투자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기업의 현실=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시대를 부르짖고 있는 국내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한마디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고 험준하다. 우선 아날로그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기존업계의 인터넷 적응도가 미국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기업들의 인터넷 적응도를 가늠하는 잣대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단적으로 B2B EC 규모로 판단해 볼 때 국내는 미국의 10%에도 못미치고 있다.
또다른 인터넷 적응도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인터넷 마인드면에서 볼 때 국내 CEO들의 인터넷 마인드는 미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수평적 조직구조를 요구하는 디지털경제의 속성과 달리 국내기업들은 아직도 수직적·종속적 조직구조를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인터넷 적응속도를 떨어뜨리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내기업들의 인터넷 적응속도는 디지털경제가 요구하는 정도보다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또다른 측면에서 오프라인업체들에 위기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소위 인터넷 전문기업들의 규모나 성장속도가 아직 작고 느린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장성숙도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적인 환경에서도 건너야 할 물길이 깊고 거세다. 그 첫번째가 오너십 경영체제다. 온라인업체든 오프라인업체든 국내기업들은 오너십을 유지하고 고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때문에 경영권에 변화가 생기는 합병은 좀처럼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굳이 합병이 아닌 인수나 매각도 쉽사리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수나 매각의 필요충분조건이랄 수 있는 기업가치평가기준조차 모호한 게 국내 실정이다.
또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기초자료도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한 M&A도 국내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오프라인기업들은 자신들의 시장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받고 있는 반면 온라인업체들은 지나치게 고평가받고 있다는, 소위 버블인식론이 팽배해 있다.
◇선결과제=인터넷비즈니스는 속도의 경제학이다. 디지털경제체제에서는 속도가 경쟁력의 가장 큰 요소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는 데 이처럼 많은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인터넷세계에서는 한번 뒤처지면 이를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명제화돼 있기 때문에 AOL과 타임워너가 인터넷비즈니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도한 합병을 통한 온오프라인 통합을 결코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인터넷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AOL과 타임워너가 합병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성취한다면, 그리고 국내기업들이 이에 대해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 영향은 온라인업계에도 오프라인업계에도 매우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21세기 디지털경제전쟁에서 산업과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온오프라인의 조기 통합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온오프라인 통합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그러나 걸림돌을 제거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구체제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고 기존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의식과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업계에서 조기 통합의 길은 『신진세력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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