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홀딩컴퍼니) 도입으로 새로운 기업통합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지주회사는 관련분야끼리 합쳐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벤처기업들 사이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코스닥등록기업이 인기를 끄는 것은 자체적으로 증자나 차입 등을 통해 자금조달이 용이하며 외국인 파트너의 투자유치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주식 맞교환(스와핑)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열사를 늘릴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본업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분할이나 인수합병(M &A),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 수익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나 새롬기술은 파이낸싱으로 마련한 자금을 이용했지만 최근 지주회사를 표방한 기업들은 현금보다는 주식 스와핑을 통해 지주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 중 주식 스와핑 방법을 이용, 가장 먼저 인터넷 지주회사로 탈바꿈한 곳은 리타워텍이다. 이 회사는 뒷문상장(백도어리스팅)을 통해 보일러업체인 파워텍을 인수한 후 주식 스와핑 방식으로 리눅스인터내셔날·아이펜텍·아시아넷 등 10개 업체를 자회사로 만들었다. 코스닥등록기업인 코아텍을 인수한 로커스도 기존에 투자한 기업들의 지분주식을 코아텍으로 이관, 지주회사로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등록기업인 한국디지탈라인도 평창정보통신·디지탈임팩트·한국디지탈라인 등 3개사의 지분 50%를 보유하는 「디지탈홀딩스」라는 순수 지주회사를 자본금 2000억원 규모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업체는 『지주회사를 통한 기업확장이 M &A보다 절차가 간단한데다 투자금액도 주식현물출자 등의 방법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며 『인터넷·생명공학 등 특정분야의 수직계열화를 위한 지주회사 설립은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지주회사의 효과를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섣부른 투자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경우 지난해 인터넷 붐을 타고 급등한 주가를 이용, 수많은 기업에 투자하며 인터넷 전문 지주회사를 지향했지만 인터넷 거품론이 일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일순간에 자금난에 처하기도 했다.
정보통신 분야의 한 전문가는 『인터넷 거품을 타고 막대한 주가차익을 올린 기업들이 사업확장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에 나서는 것』이라고 지주회사 설립 붐을 평가절하했다.
전문가들은 지주회사가 충분한 투자자금을 확보하고 있는지, 돈을 벌어주는 사업체나 사업모델을 갖고 있는지, 특정분야에서 확실한 기술분석력을 갖추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문제는 그만큼 기업들에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지주회사는 외환위기 이후 한계기업과 금융기관을 상대로 대수술을 해온 정부가 구조조정 마지막 단계인 기업 지배구조의 틀을 고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로 도입됐다. 재계는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제 도입 허용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이고 금융업은 공정위 규정을 포괄적으로 적용하되 금융부문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해 금융업종에만 적용되는 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법을 추진했다.
재계도 LG그룹을 시작으로 지주회사 설립 신호탄을 올렸으나 자금부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나 기업경영 풍토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지주회사가 기능하기 힘들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사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다. 또 지주회사를 설립한다 하더라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경제력 집중, 부당 내부거래 등의 폐해가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지주회사체제로 가는 길목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행 지주회사 규정으로는 지주회사를 통한 인사권 행사 등 소유주의 간접적인 경영개입이 가능하며 자회사의 이사회 의장은 물론 대표이사를 겸임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김민태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법적 실체가 없는 그룹 회장실, 비서실 등과 관련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룹 본사기능을 양성화한다는 차원에서도 지주회사 설립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주회사 허용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지주회사가 도입되면 지배구조의 겉모습은 바뀌겠지만 그 내부까지 완전히 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지주회사 도입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유사재벌체제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업형태의 변화와 관계없이 지주회사의 대주주로 남을 재벌총수들이 자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지주회사는 경제력 집중현상을 심화시키고 계열사간 내부거래, 기업연합(카르텔) 등 불공정 거래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가령 지주회사가 동일업종에 경쟁하는 다수기업의 주식을 보유할 경우 사실상 독점기업이 행사할 수 있는 시장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산업연구실장은 『경제력 집중문제는 사회적·도덕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뿐 경제적 효율성과는 무관하다』면서 『정부는 기업조직 형태에 관한 문제를 시장과 개별기업에 맡기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태 연구위원도 『정부의 지주회사 설립요건 등 관련 법제도는 기업들이 지주회사라는 새로운 기업형태를 만드는 데 큰 장애물』이라며 『금융산업 전반에 관한 일관된 정책이 뒷받침돼야 지주회사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주회사로의 진행은 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지주회사 도입으로 M &A는 활성화될 것이 분명하다.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사업을 특화하는 등 기업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활용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특히 갈등조정 비용이 큰 자본투입에 의한 자회사화 등과 같은 기업결합 방식에 비해 M &A가 원활히 이뤄져 기업구조조정을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다. 또 기업결합시 발생하는 매각회사와 매수회사의 갈등을 줄여 독립기업이나 사업회사의 수평적 계열화 촉진에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지주회사와 산하 자회사간 역할분담이 명확해져 경영과 사업을 분리함으로써 양자간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경영전략·R &D·재무·인사업무 등과 같은 공유부문을 지주회사에 집중시키고 산하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함으로써 중복투자와 기구중복을 피해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지주회사는 투자가적·기업가적 관점에서 산하 자회사의 사업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황인학 실장은 『지주회사 형태로 기업통합작업이 이뤄져도 대주주의 경영간섭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대주주의 지배력을 대체할 대안세력의 등장이 올바른 지주회사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관건』이라고 설명해 지주회사를 통한 대기업 소유주의 잠재적 영향력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지주회사란
지주회사란 주식소유를 통해 다른 사업체를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 흔히 대기업이 대거 출현한 후 기업재편 수단으로 등장한 제도로 형태에 따라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로 나뉜다.
순수지주회사는 공장 등 독자사업부분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자회사의 주식만 보유, 전략적 경영참여 등을 통해 배당이익으로만 운영하는 회사이고 사업지주회사는 자회사 주식 합계의 50% 이상을 보유하되 나머지 주식으로 자기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를 말한다. 즉 사업지주회사는 배당과 함께 사업이익도 추구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순수지주회사 설립 허용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재계의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지주회사가 소액자본으로 경제력을 집중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 그 설립과 운용에 상당히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공정위는 당초 지주회사가 자회사 주식을 50% 이상 소유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으나 재계의 반발로 당초안을 대폭 수정, 개정되는 공정거래법 시행 이전에 상장된 자회사 주식의 30% 이상만 소유하면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개정법률 시행 이후에 신설되는 자회사에 대해서는 당초안대로 지주회사가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도록 했다. 또한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다른 회사를 지배하기 위해 주식을 소유, 손자회사(자회사의 자회사)를 두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밖에 금융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금융 자회사의 비금융 자회사를 함께 소유하지 못하게 했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당초안대로 100% 이내로 제한했으나 기존 회사가 자산을 다른 회사에 현물출자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는 1년동안 예외로 인정할 방침이다.
이러한 규정들을 보면 현재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존의 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관진기자 bbory5@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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