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디지털을 이야기하는 지금도 아날로그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정보기술 혁명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다.
과기원 유회준 교수는 『디지털 혁명의 기수인 인터넷조차도 알고보면 아날로그 기술의 도움으로 단기간에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의 총아로 여겨지는 메모리 기술도 알고 보면 아날로그 기술의 결정체다.
대량의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하거나 높은 주파수를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날로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기술로 1㎓ 이상의 높은 주파수를 다루는 RF분야와 인터넷 고속전송 기술 등도 대표적인 아날로그 기술중 하나다.
더구나 인간이 살고 있는 현상계는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디지털을 다루는 시스템과 아날로그 사고방식을 갖춘 인간을 이어 주는 휴먼 인터페이스 분야는 아날로그 기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업계 전문가들은 아날로그는 디지털과 서로 다른 별개의 기술이 아니라 앞으로도 상호 공존하면서 병행 발전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동국대 송민규 교수도 『디지털 신호는 감쇄현상 때문에 멀리 갈 수 없어 무선통신에는 일정한 주파수를 갖는 아날로그 신호를 이용해야 한다』며 『아무리 훌륭한 디지털통신 시스템이라도 반드시 RF 신호처리 블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지난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동전화 단말기는 대부분 아날로그 시스템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단말기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디지털 단말기도 사실은 AD 컨버터·DA 컨버터·RF 등의 부분에 아날로그 기술이 접목된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의 합작품이다.
이같은 디지털 단말기는 단말기의 크기와 가격을 크게 낮췄으며 무선통신 관련 반도체 수요를 새롭게 창출하는 등 전자산업에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최근 들어 아날로그 기술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주요 ASIC 업체들이 대부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혼성모드(mixed mode) 설계를 표방하고 나오는 등 아날로그 기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아날로그 기술 기반은 척박하기만 하다.
학계의 경우 손꼽을 수 있는 아날로그 전문가는 김원창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박송배(연세대)·송민규(동국대)·유회준(KAIST)·이승훈(서강대)·최중호(서울시립대) 교수 등 10여명에 불과하다.
업계의 경우도 이같은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경우 아날로그 전문인력은 500여명의 LSI개발팀 가운데 고작 60명이며 현대전자도 아날로그 IP팀 30명 가운데 아날로그 전담인력은 10명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환경은 더욱 척박해 아날로그칩스·TLI·슬립텍·FCR·텔트론 등 5개사 정도만이 아날로그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 인력을 모두 합해도 30명 정도에 불과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전자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날로그 기술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전자의 이찬희 이사는 『아날로그가 디지털에 비해 빠르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산가지(눈금 새긴 대나무를 조합시켜 셈하는 도구)』라며 『산가지는 대나무끼리 서로 맞물리기만 하면 곧바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을 조화시키는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능을 동시에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은 고난이 기술이기 때문에 향후 통신 및 가전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들에 커다란 진입장벽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는 아직까지 아날로그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스페이스는 현실세계의 덤일 뿐이다. 아톰없는 비트는 존재가 불가능하며 비트의 실체도 따지고 보면 아톰이다.』
서울산업대 사회학과 백욱인 교수는 정보화 시대에 앞서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서로 만나야 하며 이것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젊은 세대와 중견세대, 과학과 문화가 만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광속으로 흐르는 디지털의 급류에 전복되지 않으려면 아날로그의 창조성을 디지털로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미래>아날로그 컴퓨팅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제품개발이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래기술의 하나로 아날로그 컴퓨팅을 들 수 있다.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가 인공적이며 이분법적으로 움직이는데 비해 아날로그 컴퓨터는 지능을 갖고 있는 생명체와 같이 직접 외부의 자극들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실리콘 기반의 초소형 센서다.
아날로그 컴퓨팅은 이미 자동차용 에어백 내의 진동 가속도계 등에 응용이 시작되고 있으며 에어백에 적용된 아날로그 컴퓨터는 에어백의 가격을 낮추고 탐지된 감속도뿐 아니라 보호해야할 사람의 크기에 따라 에어백을 부풀릴 수도 있게 해준다.
처음으로 아날로그 컴퓨팅이라는 용어를 소개한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 소재한 미래연구소의 폴 사포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아날로그 또는 동적인 방식으로 응답하는 지능적인 도구가 주변에서 널리 사용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즉 앞으로 머지 않은 미래에 취급자에게 말을 하는 소포, 난기류를 만났을 때 스스로 모양을 바꾸는 비행기의 날개, 각 사람의 체형을 고려해 최적의 모양으로 스스로 모양이 변화하는 의자 등이 등장하게 된다는 의미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연구되는 아날로그 컴퓨터 기술로는 GPS센서, 비행기 날개 구조속에 장착되는 센서, 광학교환장비, 센서구동형 냉난방시스템, 빌딩 토대 등을 들 수 있다.
GPS센서는 특수 소포 등과 함께 사용할 경우 소포처리 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으며 비행기 날개 센서는 날개에 무수히 작은 보조날개를 만들어 비행기 날개 표면의 저항을 변화시켜 공기 흐름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할 수 있고 광학교환장비는 20ns의 속도로 별개의 경로에 광신호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센서구동형 냉난방시스템은 획기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해줄 것으로 기대되며 빌딩 토대는 내장된 센서를 이용해 대기중의 압력을 감지하고 재료의 속성을 유연하게 바꾸도록 해준다.
아날로그 컴퓨터는 MEMS(Micro-Electro Mechanical System)라고도 불리며 디지털 메모리와 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것과 같은 물질내에 센서와 벨트·기어·반사경·구동기 등이 포함된 작은 기계를 이식해 만들어진다.
폴 사포의 미래연구소의 홈페이지(http://www.iftf.org)는 「센서:정보기술혁명의 다음물결」이라는 제목으로 PDF 형식의 보고서를 통해 MEMS에 대해 소개하며 MEMS정보센터(http://mems.isi.edu)에서도 아날로그 컴퓨터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밖에 MEMS 기술응용센터(http://www.mcnc.org)에서도 MEMS 개념을 시험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삼성전자 반도체, 연말 성과급 '연봉 12~16%' 책정
-
2
한덕수 대행도 탄핵… 與 '권한쟁의심판·가처분' 野 “정부·여당 무책임”
-
3
“12분만에 완충” DGIST, 1000번 이상 활용 가능한 차세대 리튬-황전지 개발
-
4
정보보호기업 10곳 중 3곳, 인재 확보 어렵다…인력 부족 토로
-
5
日 '암호화폐 보유 불가능' 공식화…韓 '정책 검토' 목소리
-
6
프랑스 기관사, 달리는 기차서 투신… 탑승객 400명 '크리스마스의 악몽'
-
7
“코로나19, 자연발생 아냐...실험실서 유출”
-
8
美 우주비행사 2명 “이러다 우주 미아될라” [숏폼]
-
9
단통법, 10년만에 폐지…내년 6월부터 시행
-
10
권성동, 우원식에 “인민재판” 항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 성립으로 단정”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