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14회-보잉사와 양계장

1997년 6월 대형여객기 747을 제작하는 보잉사는 새로운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여객기 제작 소요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였다. 여객기를 조립하는데 가장 까다로운 것 가운데 하나가 배선이다. 747의 경우 50 내지 100개의 전선이 들어있는 1000여개의 전선 다발을 연결해야 한다. 전선들의 길이는 50㎝에서 40m까지 다양하며 어떤 것은 조종에 필요하고 또 다른 것은 실내등을 켜거나 음악 채널을 바꾸는데 쓰인다.

이렇게 사용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연결하는 방법과 부품도 다르다. 또 747은 모두 고객이 주문한 사양에 따라 조립하기 때문에 만약 배선이 잘못될 경우 해당되는 전선 다발을 전부 다시 배선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전선 하나하나 연결할 때마다 부품 리스트와 배선도면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작업해야 한다. 그만큼 배선은 힘들고도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작업 중 하나다.

보잉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디지털 방법을 시도했다.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부품들을 이용해 몸에 착용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었다. 안경같이 착용하고 투시로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모자에 부착시킬 수 있는 작은 비디오 카메라, 허리에 맬 수 있는 컴퓨터와 팔에 차는 작은 키보드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선이 지나가는 모든 부분에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컴퓨터가 알아 볼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검은 점을 표시하였다. 배선 기술자가 전선을 연결하러 지정된 장소에 가면 모자에 부착된 비디오 카메라가 표시되어 있는 검은 점을 먼저 읽는다. 컴퓨터는 데이터 베이스에서 그 곳에 연결해야 되는 배선도면과 부품 리스트를 착용한 디스플레이에 표시해 준다.

기술자는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대로 조립하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가 지시하는 대로 연결하기 때문에 실수가 거의 없고 또 전에는 숙련공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작업에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배선시간을 20∼50% 단축시켜서 제작비용을 대폭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과 방법이 보잉사처럼 크고 기술력이 있는 회사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미국 애틀랜타의 조지아텍연구소는 양계장과 협력해 이 기술을 양계장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대형 양계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치산업이다. 물·사료·배설물과 계란을 자동으로 수거하고 배급하는 장치 및 설비들이 항상 가동되어야 한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가 고장났을 경우 얼마나 신속히 대처하여 수리하느냐가 전체의 생산성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보잉사에서와 같은 장비를 착용하게 하고 물이나 사료 배관 밸브나 다른 유지보수가 필요한 곳에 크고 작은 점으로 위치를 표시했다. 어느 부분에 물이나 사료가 공급되지 않을 때에 기술자가 그 장소에 가보면 컴퓨터는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에 지금 취해야 할 응급조치를 알려준다. 또 필요한 부품이 어디에 있고 그 부품을 교환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알려준다.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워키토키를 통해 필요한 부품을 요청한다. 응급조치가 끝날 무렵 부품이 배달되고 컴퓨터가 지시하는 순서대로 고장난 부품을 교체한다. 마지막으로 컴퓨터가 알려준 테스트를 완료함으로써 상황이 끝난다.

이러한 기술은 보잉사나 양계장이외에도 석유화학과 같은 모든 장치산업과 자동차 정비 등 기계나 장치·설비를 유지 보수해야 하는 많은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보잉사와 양계장은 거의 같은 점을 찾아 볼 수 없는 기업이다. 하지만 디지털기법을 이용해 최적의 프로세스를 구축한 점에서는 같다. 첨단이냐, 굴뚝이냐, 양계장이냐에 따라 기업의 기술적 수준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디지털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데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굴뚝산업일수록 디지털 마인드가 가져다 주는 이득이 클 수 있다.

비행기를 만드는 데나 닭을 키우는 데나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확립된 최적의 프로세스가 있게 마련이다. 디지털 마인드는 그 최적의 프로세스를 찾아 체계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안목이다. 이러한 안목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사고와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최적의 대안을 찾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도 결국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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