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10회-기술 표준의 아웃사이더

『중소 또는 벤처기업의 경우 국제 기술표준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정보에 어둡기 때문이다.』(B협회 K과장)

『수년간의 개발 끝에 완성된 칩을 가져가 막바지 샘플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기술표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따른 손실은 비용으로 계산하기 어렵다.』(G사 K사장)

중소업체 경영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국내 업체들이 기술표준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국내 중소 부품소재업체들이 기술표준 흐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주요인은 「정보력 부재」 「전문인력 부족」 「자본력 취약」 등 이 세가지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 「공적 표준(de jure standard)」과 관련한 국내의 표준화 활동은 척박하다.

대표적인 표준기관인 국제표준화기구(ISO)는 보유하고 있는 규격수가 지난 98년 기준으로 1만1950종이며 국제회의 개최건수도 1365회에 이르나 한국은 50회 정도 참가하는 데 그쳤다.

또 국제표준화기구·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1000여개의 위원회 중에서 한국이 간사국을 수임하고 있는 것은 단 한개뿐이다.

다종다양한 제품의 상호간 네트워크화·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기기간의 호환성

확보에 따른 표준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는 이 때 국내는 국제표준화 활동과 전략에 취약하다.

국제표준회의에서 활동한 바 있는 업계 관계자들은 『정보교류와 협력을 위한 전문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표준과 관련해서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도 올해 약 821억원 규모로 총 연구개발

투자예산인 3조5000억원 중 2.3%에 불과하다.

이같은 예산부족은 중소·벤처기업의 국제회의 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인식변화와 함께 제도적인 뒷받침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미 세계 각국은 표준화를 통한 세계시장의 선점으로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공동으로 협력하거나 지역포럼 및 컨소시엄 등을 개최, 표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표준(standard)이 기술(technology)을 지배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혁신적인 기술제품도 국제표준화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 시장지배력을 확보하

지 못하고 사장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일본 소니의 베타방식 VCR 표준화 실패는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70년대 후반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던 소니의 베타방식 VTR는 시장 표준화 실패로 마쓰시타의 VHS방식 VTR에 패배해 결국 시장에서 사장됐다.

이는 또한 공적 표준 이외에도 업계가 말하는 소위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실상 표준이란 국제적인 표준화 기관의 승인여부와 상관없이 자유 시장경쟁의 결과 사실상의 대세를 점유하게 된 것이다.

우리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표준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등이 바로 이런 예에 해당한다.

이들 선진기업의 표준화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원천기술이 이들에 집중되고 이 표준화에 끼지 못한 기업은 막대한 로열티를 물어야 했다.

이처럼 국제표준은 공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으로 병행되고 있으며 특히 기술발전의 속도가 어떤 산업분야보다도 가파른 전자·정보산업에 있어 사실상 표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와 고선명(HD) 디지털TV는 사실상 표준의 중요성을 실증하는 예다.

DVD는 일본 업체들의 시장선점 영향이 컸다.

DVD 한면에 데이터를 이중으로 저장해 기존 제품과 호환성을 중시한 일본 소니 진영과 DVD 양면에 데이터를 저장해 대용량화를 추구한 마쓰시타 진영의 싸움이 그것이며 국내 업체는 물론 미국 업체들도 일본 업체의 표준에 끌려다녀야 했다.

HDTV에서는 일본과 유럽의 시장선점 다툼에 미국이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대응했

다.

일본의 「유레카」 프로젝트, 유럽의 「EC95」 등이 그것이며 미국은 제니스·AT&T를 중심으로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 91년에 시험방송에 성공했다.

뒤늦게 표준화의 중요성을 인식한 국내 업체들도 서서히 표준문제에 정면 승부를 하고 있다.

국제표준의 변두리에 머물며 표준을 따르기에 급급했던 국내 업체들이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MP3, 디지털TV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국제표준에서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될 것인지, 아니면 도약할 것인지는 이제부

터 시작이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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