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라는 화려한 기술의 그늘에 가려서 제조장비는 그 산업 규모와 중요성이 덜 알려진 게 사실이다.
반도체를 만들어 내는 제조공정 장비는 반도체만큼이나 전기·전자·화학·재료·물리·금속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야 가능한 분야다.
더구나 반도체는 제조공정중에 불순물이 유입되거나 조그만 잘못이 발생할 경우 곧바로 수율이 떨어져 막대한 손실을 입기 때문에 장비의 성능과 신뢰성·정밀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장과 궤도를 같이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반도체 제조공정용 장비는 국산화가 가장 뒤처진 분야중 하나다. 장비 국산화율은 20%도 안된다. 반도체 수출이 늘수록 장비 수입량도 증가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장비를 하나씩 국산화해 왔다.
지난 80년대 초 반도체산업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외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제품을 국내 판매하는 대리점이나 지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장비업계의 경영자도 모토로라·씨그네틱스의 한국법인에서 파생된 인물이 많다.
곽노권 한미 사장(63)은 지난 57년 이천전기(기계과장)·모토로라코리아(금형개발 부장)에서 근무하다가 80년에 트림·폼, 몰딩 장비를 생산하는 한미금형(현 한미)을 설립해 반도체 장비 제조산업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한미는 이후 반도체 조립공정에서 여러 기업가들을 배출했다. 이중 몰드·싱귤레이션 공정장비를 생산하는 선양테크의 정도화 사장과 역시 마킹·트림·폼장비 제조업체인 씨피씨(구 크라운정공)의 김명재 사장도 한미에서 나와 창업했다.
80년대 초반 창업한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도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 1세대에 속한다. 국내 벤처기업 1세대의 대부로도 통하는 정문술 사장은 국산 반도체 장비기반이 척박하던 90년대 초에 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핸들러를 처음 국산화함으로써 외산 장비에만 의존하던 당시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정문술 사장과 함께 김중조 성원에드워드 사장은 90년대 초반 충남 천안시 외곽
천안2공단에 반도체 장비 생산기지를 만들어 지금의 「반도체 장비 밸리」로 키우는데 노력한 인물이다. 클린룸 설비 전문업체인 신성이엔지의 이완근 사장은 정문술 사장 등과 함께 벤처기업인 1세대에 속한다. 이 사장은 성균관대 교육학과를 졸업후 경원세기에서 일하다 독립해 공조기기 사업에 뛰어들어 86년 클린룸 설비를 국산화하면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70년대 반도체 소자업체에서 근무하다 나와 창업한 경영인들로는 김재욱 한양기공 고문, 박주천 칩트론 사장, 한종훈 한택 사장, 김형육 한양이엔지 사장 등이 있다.
박주천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7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기술과장을 역임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80년대에 미국 심텍사의 테스트 핸들러를 국내에 공급하기도 했으며, 현재 테스트 핸들러를 생산하는 아주시스템도 경영하는 등 오래전부터 반도체 장비업계에 투신해온 인물이다.
한종훈 한택 사장도 76년 삼성전자 반도체에 입사해 4년동안 일하다 93년부터 보우교역(현 한택)을 설립해 네덜란드 ASML사의 스테퍼를 국내에 공급해오는 한편, 웨이퍼 이송장치·검사장비 생산에 뛰어들었다. 김형육 한양이엔지 사장은 71년부터 7년동안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근무한 후, 82년부터 한양기공·한양이엔지 사장을 맡고 있는 등 반도체 장비 생산에 전념해 왔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출현은 제조용 주변장치들을 축으로 해 80년대 말부터 90년초에 활발하게 이뤄졌다. 케이씨텍의 고석태 사장의 경우 지난 87년에 일찍이 반도체 장비생산에 뛰어들어 가스공급장치·웨트 스테이션을 개발하는 등 오래전부터 반도체산업과 인연을 맺어왔다. 90년대 중반에는 미국·일본업체와 공동투자해 5개의 합작사를 설립하는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올초 케이씨텍이 부회장 직책을 새로 만들어 영입한 이창세 부회장은 LG화학 기획본부장, 울산공장장을 거쳐 LG실트론 대표이사, 한국설비보존공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반도체·화학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다산씨앤드아이의 오희범 사장은 지난 88년부터 3년동안 케이씨텍의 부사장을 지내다 91년에 창업했다.
장명식 화인반도체기술 사장은 서울일렉트론 반도체 사업부에서 근무하다가 89년부터 9년동안 한국램리서치 사장을 지냈다. 오순봉 아토 사장은 경남공고를 나와 78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일하다가 91년 아토를 설립해 가스공급장치 등을 개발하는 등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장성환 유일반도체 사장은 창원기능대 전자과를 졸업하고 78년부터 87년까지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서 근무한 후, 88년 테스트 핸들러 등을 생산하는 유일전자(현 유일반도체)를 설립했다. 지난달부터 장성환 사장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전병태 사장(57)은 93년부터 올해 7월까지 삼성테크윈에서
반도체 장비사업을 이끌어 왔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77학번인 성규동 이오테크닉스 사장(43)은 82년부터 금성사 중앙연구소, 대우중공업 기술연구소, 코리아레이저에서 근무한 레이저분야 정통 엔지니어로 89년 레이저 응용 마킹장비를 생산하는 이오테크닉스를 세웠다.
준텍의 유홍준 사장도 지난 90년 반도체 제조공정에 필요한 자동화 장비를 제조하는 데 첫발을 내딛은 후 지금까지 줄곧 반도체 번인 테스트 및 후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해오고 있다.
서울일렉트론의 반도체부문 신임 대표이사로 지난달 영입된 임종성 사장은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사업장 전무 출신으로 20여년간 반도체 개발과 생산 공장기획 등을 담당해왔다.
이 당시 외국의 반도체 장비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면서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장비 생산에 뛰어든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디아이의 박기억 회장은 지난 55년 과학기기를 수입판매 회사를 설립하다가 반도체·LCD 검사장비 등의 생산에 뛰어들면서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박원호 대표이사 부회장과 최명배 사장이 디아이의 반도체 장비사업을 이끌고 있다. 연우엔지니어링의 이건환 대표이사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금성반도체에서 4년동안 일하다 87년 연우교역을 설립, 일본 히타치의 핸들러 판매를 하면서 반도체 장비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인 웨이퍼 일관가공(Fab)공정 장비는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의 참여가 가장 늦게 시작된 분야다.
지난 91년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출신의 김상호 사장이 화학기상증착(CVD)장비를 만드는 아펙스를 설립한 이후 반도체 제조 전공정 분야에 업체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반도체 양산용 전공정 장비인 CVD 공정 장비를 국산화해 반도체업체들에 공급함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황철주 사장은 외국계 반도체장비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95년 퇴직금만을 가지고 여직원을 포함해 세 명으로 주성엔지니어링을 설립한 전형적인 벤처기업가다.
선익시스템의 손명호 사장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지난 83년 외국의 반도체장비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다가 유기금속 화학기상증착(MOCVD) 공정 장비 개발에 뛰어들었다. 박경수 피에스케이테크 사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이천중기와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90년에 피에스케이테크를 설립해 반도체 전공정 장비인 애셔(asher) 개발에 나서 국산화했다.
반도체 소자업체 및 장비업체에서 나온 엔지니어들의 창업은 반도체 경기가 호황을 이룬 95년을 전후해서도 활발했다.
이정기 기림세미텍 사장은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에 들어가 기흥반도체 제2라인 및 반도체 연구소 U라인·포토마스크라인 건설에 참여했으며, 94년 기림세미텍을 설립해 반도체 부품생산에 뛰어들었다. 반도체 검사장비·트랙공정 모듈 등을 생산하는 실리콘테크의 우상엽 사장(39)은 88년 인하대 전기공학과 졸업후, 동경엘렉트론코리아에서 서비스팀장과 개발팀장을 지내다 94년 창업한 엔지니어 출신 사장이다. 태양테크의 조현기 사장도 94년부터 반도체 장비·부품제조에 뛰어 들었다. 태화일렉트론 신원호 사장은 일본 캐논반도체의 한국 지사와 케이씨텍에서 장비 영업을 담당하다 지난 95년 반도체 장비제조에 뛰어들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외국계 장비업체들이 국내 업체와 합작투자 형태로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인 베리안과 서성기 사장이 합작해 한국베리안을 설립했다. 이를 전후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램리서치·동경엘렉트론 등 미국·일본의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잇따라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베리안 초대 사장인 서성기 현 에이텍 사장은 75년 삼성반도체에서 몸담은 이후 유니텍·재림엔지니어링·청송엔지니어링(현 에이텍)·토소 SMD·청송시스템(현 IPS)의 사장을 차례로 역임하는 등 반도체 장비분야에서 외길인생을 걸어 왔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회장으로 선임되는 영광을 안았다.
외국 유수 반도체장비업계의 한국법인 사장들은 본사의 덩치만큼이나 비중있는 경영인들이 많다.
이영일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코리아(AMK) 사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페어차일드코리아와 슐렘버제코리아 대표를 차례로 지내는 동안 국내외에 공장설립을 진두 지휘했으며, 93년부터 AMK사령탑을 맡고 있다. 이영일 사장은 다년간 외국계 업체들을 이끌어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경영으로 소문이 나있다.
김동성 한국램리서치 사장은 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폴리테크닉대와 남가주대에서 학·석사를 취득한 후, 90년 삼성전자에 몸담기 전까지 미국 부로우·유니시스 등에서 근무했다. 김동성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멀티미디어 연구소장, 시스템LSI본부 총괄 임원을 맡았으며 98년 7월 한국램리서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종길 아드반테스트코리아 사장은 64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노틀담대에서 물리학·전자공학 석·박사를 취득한 후, 83년 삼성전자에 들어가기 전까지 미국 데이터제너럴, 인터실, 시너텍사에서 차례로 근무했다. 이종길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기반기술센터장,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256MD램 기술·제품개발과 1기가·4기가 공정기술과 소자 연구개발을 지휘했다.
지난 95년부터 노벨러스코리아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정낙경 사장은 이전에 현대중공업·현대양행·현대산업개발·현대건설·스위스의 슐제르브러더스·머티리얼즈리서치코리아 등 다양한 회사를 거쳤다.
김용길 한국베리안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 학·석사를 취득한 후, 미국 MIT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IBM 왓슨연구소를 거쳐 89년 미국 베리안사에 들어간 김용길 사장은 98년부터 이온주입기를 전문 공급하는 한국베리안을 이끌고 있다.
이달부터 한국알박의 대표이사를 맡게 될 백충열 전무는 일본 동북대에서 재료물성학 석·박사를 수료한 후 일본 알박재팬 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93∼94년에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과장으로 근무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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