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한동철(dchan@swift2.swu.ac.kr)
80년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공학사
84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90년 미국 조지아대 경영학박사과정
93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학박사
94∼95년 현대그룹 경제연구소 마케팅실장
99년∼현재 서울여대 경영학과 부교수, 부설 유통전략연구소 소장, 타스테크 상임고문, 미래트레이딩넷 상임고문, 삼양사 연구교수
저서:소매관리, 전략적소매경영 등
지난 5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국내가전유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가전대리점은 90년대 후반부터 쇠락의 길로 들어섰고 이제는 그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삼성, LG, 대우 등 트로이카 체제의 가전 3사와 대여섯 군소가전업체, 수입가전업체의 대리점들이 국내가전유통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선진국에서 볼 수 없는 한국식 특유의 가전대리점들은 대형가전메이커와 완전히 종속적인 관계로 철저하게 가전메이커의 이익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컬러TV가 도입되던 80년대 초만해도 소비자들은 가전대리점 앞에서 배급표를 받아야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던 시절에 대리점 개설은 가전메이커 유통력의 징표였다.
그러나 지난 93년 국내에 최초로 할인점이 등장하고 96년부터 외국계 할인점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유통은 할인점과 전문점들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전자상거래까지 나타났다.
80년대와 90년대 초만해도 국내 가전대리점의 총 숫자는 5000∼6000여개에 달했으나 이제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가전 3사 체제도 무너졌고 한때 1500여개씩 존재했던 삼성과 LG 대리점도 이제는 코드가 살아있는 것이 800여개, 실제로 움직이는 대리점은 600여개에 불과하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삼성과 LG 대리점은 300여개로 줄어들 것이다. 일년에 매출을 수십 억에서 수백 억 정도 올리는 대형대리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메이커의 물류기지로 변하거나 혹은 전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할인점과 전문점으로 대변되는 신유통은 이제 가전유통의 중추적인 핵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21세기 유통들이 등장하면서 20세기의 유물인 대리점은 잊혀져 갈 것이다. 이르면 5년 이내에 할인점의 가전취급량은 현재 약 6조원으로 추산되는 가전전체 시장규모의 25∼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100여개에 달하는 할인점은 5년 이내에 200개를 넘어서고 그리고 할인점 체인업체는 현재 10여개에서 서너개로 재편될 전망이다. 서너개의 할인점 체인업체들은 각각 수십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수천 평에 달하는 매장을 가진 할인점의 수백 평대 할인점내부 가전매장은 현재 대리점의 5∼10배 정도의 매출액을 커버할 것이다. 수십 개의 할인점을 가진 할인점 체인은 아무리 적게 봐도 현재 대리점 100개 정도의 물량을 취급할 것이다.
앞으로 국내 양대 가전메이커의 상무급인 본부장이 선두할인점 체인의 차장급인 매입팀장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은 비일비재할 것이 분명하다. 국내에 조만간 들어올 가전전문점, 또 국내에 진출을 준비중인 가전전문점과 기존 전문점은 5년 이내에 가전총매출의 약 20∼25%를 차지하고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에 이르는 가전매장을 확보, 할인점과 더불어 국내가전유통의 중핵으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지난해 수입선다변화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일본가전업체들은 직영매장보다는 할인점과 전문점을 통한 판매를 늘려갈 전망이다. AS와 물류에서 일본업체들이 국내가전유통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유통의 촉진제로 등장할 것이다. 국내 할인점과 전문점이 치열한 가격경쟁에 몰입하면서 일본본사와 직접 가격협상을 하고 국내의 일본업체 직영지사, 대리점 혹은 벤더들을 물류기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진출을 준비하는 유럽계도 동일한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국내가전메이커의 해외물량과 국내물량을 연계하는 방식도 강구중이다.
전자상거래는 언론지상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폭풍의 핵이 되지 않는다. 5년 이내에 아무리 많이 늘어야 전자상거래로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수량은 국내가전 총매출의 2∼5% 이내로 나타난다. 물론 미국식으로 정부가 전자상거래의 세일즈택스(국내의 부가세)를 10%에서 5%나 혹은 완전면제하고 또 정부가 현재 추진중인 가전대리점협회를 만들어 전자상거래 지원자금을 몇백 억원 무상지원하면 5%를 약간 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가전유통경로가 있다. 백화점, 연금매장, 그리고 각종 재래상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통망들은 변수가 되지 않는다. 5년 이내에 국내 유명백화점에서 가전매장은 거의 사라지고 최고급 디지털제품과 최고가의 수입가전제품 전시장만이 남을 것이다. 연금매장은 명목만 있는 곳이다. 그리고 5000여개의 점포와 1000여개의 점포를 가진 용산전자상가나 강변테크노마트도 가전매출이 심각하게 떨어질 것이고 지방의 집단상가(대전 둔산전자타운, 광주금호전자타운, 대구유통단지)의 매출은 경쟁력있는 할인점과 전문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가전유통은 할인점과 전문점의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21세기는 디지털시대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유통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는 디지털유통을 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6년 동안 국내 가전메이커와 유통업체, 그리고 국내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해외 가전유통업체와 다양한 형태의 관련을 맺으면서 느낀 것을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국내 가전도매상들이 국내 가전 총 시장규모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무자료는 앞으로 5년 이내에 절대로 근절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세청의 카드사용권장, 세제시스템의 개편, POS를 통한 경쟁력있는 신유통의 장점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 무자료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2∼5% 도매마진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기존 가전유통업체들에게 부가세 탈루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줄일 때가 됐다. 사고를 전환해서 자료화 비율을 늘리고 할인점이나 전문점과의 효율적인 거래를 통해 선진유통을 배워야 한다. 어차피 점차 더 힘들어지므로 이제는 새로운 방식(정상거래를 통한 유통효율의 증진)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가전메이커들은 종속적으로 다뤄왔던 대리점부터 손 놓고 할인점이나 전문점과의 정상적인 거래방식을 개발할 때다. 가격교섭력에서 할인점, 전문점에 밀리게 되면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또 대리점과 신유통의 제품차별화에 대한 압박을 대리점과 신유통 양쪽에서 받게 되면 현재와 같이 흉내만 내는 제품차별화(모델넘버의 변화)는 더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소비자가 확실하게 차별화를 느낄 수 있는 완전한 모델변경의 필요성이 등장하면 생산라인을 신유통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셋째, 대리점 지원을 줄이게 되면 가전메이커는 대리점에 대한 기존투자 금액의 회수와 소비자에 대한 AS가 부담으로 등장한다. 어차피 치뤄야 할 문제이므로 대리점과의 관계변화(종속에서 상호보완으로)를 추구해야 한다. 대리점은 전자상거래용 물류기지나 소비자에 대한 신제품 전시장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경쟁력이 있는 대형대리점의 상권을 보호해주게 되면 그 지역내의 할인점이나 전문점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리점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매출액보장, 사입가격협상과 연계해 시도할 수 있다.
넷째, 가전메이커는 앞으로 신제품 출시를 신유통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수행해야 한다. 소비자정보를 신유통이 획득해 가전메이커에 전달하고 가전메이커는 이를 분석, 신제품을 소비자에게 맞는 것으로 개발한다. 그리고 판매가격은 메이커가 아니라 신유통이 정하고 메이커는 이 가격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유통방식을 국내가전메이커가 도입할 때가 됐다.
다섯째, 국내가전메이커들이 대리점의 약화와 신유통의 증대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자사직영점 출점을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은 가전메이커의 힘이 가전대리점의 힘보다 훨씬 더 우월해 이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가전메이커 직영점이 유통전문업체들의 직영점포인 할인점, 전문점과 대항해 우위를 점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가전메이커는 몸으로 하는 지식경영을 하나 신유통업체들은 엄청난 유통노하우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경영을 한다. 직영점 출점보다는 제품개발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여섯째, 해외가전메이커와 유통업체들이 국내와 해외를 연계하는 제품사입과 판매전략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현재도 국내 진출한 해외유통업체와 앞으로 국내에 진출할 해외유통업체들이 조금씩 사용하고 선보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전메이커는 가격협상력을 거의 잃게 되고 기존 가전유통업체들은 10∼20% 차이나는 사입가격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해외업체들이 다양한 방식(선결제방식, 연간최저사입제, 가격연동사입제, 해외물량연계제도)을 동원하게 되면 국내가전제품의 가격은 아무리 적어도 15% 이상 떨어지게 된다. 국내유통업체가 하지 못하는 최저판매관리비 시대가 온다. 해외업체들의 판매관리비가 매출액대비 7∼12%에서 5% 대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점차 선보여질 다양한 기법들은 가전메이커와 가전유통업체의 선택 폭을 줄이게 된다. 해외업체의 유통방식을 연구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라.
일곱째, 전자상거래는 물량판매보다는 신제품 소개와 소비자에 대한 각종 서비스차원에서 활용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물류방식이 동원되면 대리점은 더 힘들어진다. 웹 판매가격이 대리점의 가전제품 판매의 기준가로 될 것이다. 소비자가 컴퓨터상에서 본 가격으로 대리점에 와서 제품판매를 요구하게 되면 대리점은 고객확보차원에서 역마진에 팔아야 하는 경우가 나타날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것이 잘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전자상거래 경로에 대한 국내메이커와 해외메이커의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형식상이 아니 실질적인 형태차별화나 코브랜딩(co-branding)의 방식을 강구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조에만 노하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유통의 노하우도 제조만큼 중요하다. 21세기에 1등 가전메이커와 1등 가전유통업체는 번영한다. 2등 메이커와 유통업체는 간신히 생존한다. 3등이나 그 이하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장부상에 빨간줄이 현재보다 많이 나타나기 전에 20세기의 몸으로 하는 경험경영이 아닌 머리로 하는 지식경영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신유통의 진짜 무서운 맛을 겨우 10분의 1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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