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C(Electronic Commerce)로 불리는 전자상거래가 국가경쟁력 확보의 기반으로까지 인식되면서 어느 기업, 어느 국가도 EC의 동향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4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막을 내린 「국제전자상거래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Electronic Commerce)2000」도 전세계 산·학·연구계는 물론 각국 정부로부터 주목을 받은 EC 행사 중 하나다.
EC분야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주도해 열린 이번 행사에 전세계 26개국 1000명의 학자와 각국 정부 및 세계기구 관계자는 물론 NTT도코모·팁코 등 쟁쟁한 기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등 행사 개최 2회째 만에 전세계적인 행사로 발돋움한 것이다.
강연 내용상으로도 미국·일본·유럽 등의 EC전문가들과 국내 관계자들이 EC의 최신 기술성과와 동향을 소개했는가 하면 EC 실패의 교훈과 법률적 문제 등 현실적 문제까지 논의하면서 EC의 미래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 국내 EC기술을 세계에 널리 알릴 정도로 성공적 행사를 치르는 데 막후 역할을 한 주역은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이재규 교수(45·경영정보학 박사)다. 이 교수는 전자상거래 분야에 대한 연구와 인식확산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외국의 교수들과 함께 사단법인 국제전자상거래연구센터를 설립, 이 단체를 이끌면서 국제전자상거래 관련 학술대회를 준비해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EC분야에 대한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는 생각에서 뜻이 맞는 외국의 친구들과 지난 98년부터 이같은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처럼 거대 국제행사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가 미국에서 수학하고 또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사귄 교수들이 큰 힘이 됐다.
향후 지식경영의 보편화와 함께 EC를 지원하는 언어가 부각될 것으로 보는 그는 행사 마지막날 EXML(Extended Rule Markup Language)을 이용해 관련 산업의 확산을 위한 기술적 성과를 소개해 관련 기술개발업체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번 ICEC2000은 EM·OCEC 등 세계적인 EC관련 잡지의 편집위원장이 직접 방문, 관련 행사와 발표 논문 등 행사 상황을 그대로 취재해 다음달 잡지에 실을 정도로 도움을 받으면서 국제적 관심거리로 부각됐습니다.』
이 역시 그가 세계적인 EC관련 학술행사와 잡지편집활동 등에 적극 참여해 얻은 노력과 명성에 힘입은 것이라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
국내에서 EC와 관련해 알 만한 학자의 상당수가 그의 제자거나 후배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이번 행사를 국제행사로 발돋움시키면서 우리나라의 EC정책과 기업의 열기를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번 행사에서 민간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였다』고 말하는 그는 향후 정책쪽이나 기업의 활동방향도 이 부분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대안은 경영과 기술간의 접목으로 모아진다. 그는 『경영자란 「현실적 이익극대화」는 물론 「미래의 이익창출」까지 생각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는 요즈음 EC의 급속한 전파에 따라 오프라인 기업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될 변화과정과 영향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건설·유통·중공업·전력통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대기업들과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해본 이 교수는 국내 대기업·중소기업들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이 밝힌다.
『국내 EC관련 기술개발업체들은 충분한 벤처정신으로 무장돼 있지만 고유기술의 수준은 무척 뒤떨어집니다. 한국형 SW툴 중에 국제적인 공인을 받은 변변한 제품 하나 없지 않습니까.』
자연히 국내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용하는 제품은 외국제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세계적 SW기술업체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분야에 집중해 대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전사적자원관리(ERP)업체인 SAP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B2C를 통해 기업들이 선별되고 남아 있을 기업과 떨어져 나갈 기업들이 분명하게 갈리게 되면 전문적 요소기술력을 갖춘 기업끼리 합병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서너개 기업들만 남아야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국내 정보통신SW기술의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방법론으로 이어진다.
국내에 약 500개의 EC관련 솔루션 회사가 있다는 것에 대해 그는 즉시 1900년대 초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어 선별(shake out)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자동차회사가 당시 500개 정도 난립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른바 「빅3」만 남아있지 않느냐며 자연스런 구조조정론을 제시한다.
이 교수는 『그동안 국내에 수많은 SW회사들이 생겨 났지만 국제적인 인증을 받은 회사가 없고, 국내 수요처조차 외국 SW를 선택해 쓰는 바람에 이익은 고스란히 외국기업의 몫이 되고 말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는 국내 SW업체들의 기본적인 요소기술적 능력을 토털솔루션으로 묶어준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최근 갖가지 EC분야 정책을 내놓으면서 산업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도 들어봤다.
『각개 기업의 e마켓플레이스 구축에 정부가 강력한 통합유도책을 사용하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규모의 경제만을 따져 기업간 경쟁과정 없이 규모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기업간 경쟁을 통해 두어 개 정도가 남아서 서로 산업표준을 놓고 다투기도 하고 합의도 거치는 단련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산업공학으로부터 시작해 전자상거래쪽으로 학문 영역을 확대해온 그는 학자로서 나름대로의 희망을 하나 갖고 있다.
이번 ICEC2000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은 그의 국제적 영향력과 노력에 힘입은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EC분야에 대한 그의 국제적 안목과 대인관계 못지않게 우리나라를 EC강국으로 키우고자 하는 내면의 애국적인 요소가 작용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한 그의 희망은 ICEC2001대회가 오스트리아에서 열리기로 확정되면서 성공적인 뿌리내리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EC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또 하나의 작은 꿈을 조심스럽게 펼쳐보인다. 이번 행사와 같은 맥락에서 EC전문인력 양성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다.
『가능하다면 경영흐름과 EC분야의 엔지니어링 SW기술 양쪽을 함께 가르치는 EC전문대학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미국에도 아직 이러한 대학원이 없는 만큼 EC전문대학원을 만들 경우 3년이면 이들 국가와 대등해지거나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전문인력 양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전자상거래관리사처럼 최소한의 EC지식을 갖춘 사람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전문EC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데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95년 텍사스대학에 교환교수로 재직하면서 EC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어느새 세계적 EC전문가로 우뚝 선 이재규 교수.
그의 고집은 지난 98년 조그맣게 시작한 우리나라 주도의 국제 EC학술대회를 세계적 대회로 발돋움시키면서 개인적인 노력이 국가경쟁력 제고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교수의 EC에 대한 노력의 결실을 주변사람들은 기독교식으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의 노력은 창대한 성과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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