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지역이 심상치 않다. 반도체업체들이 설비증설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대생산국으로 자리잡은 한국·일본·대만 등 3국간의 경쟁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유력한 반도체의 생산기지로 떠오르면서 반도체의 맹주자리를 놓고 동북아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옛 영화를 되찾으려 하며 한국은 대만 등 후발주자들을 따돌리고 확실한 반도체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대만은 한국을 제치고 반도체 생산 대국이 되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으며 중국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신화를 그대로 전수받으려 하고 있다.
당장 가시화한 것은 아니나 이들 네 나라의 반도체 생산 경쟁은 오는 2002년께를 전후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며 이들 나라의 역학관계에 따라 세계 반도체 생산 구조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재건에 나선 일본 =일본은 그동안 미국 업체의 후원을 받은 한국에 쫓기고 대만 업체의 눈부신 성장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 대국의 이미지에 흠집이 생겼다.
이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한국 업체의 등살에 밀려 D램 사업을 대폭 축소하는 지경까지 몰렸다. 일본 업체들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업체를 적극 지원했으나 대만 업체의 급성장으로 자칫 「제2의 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해외 투자를 억제하는 대신 자국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NEC,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전기, 후지쯔 등 일본의 5대 반도체업체들은 올해 반도체 설비 투자에 사상 최대인 9000억엔을 쏟아부을 계획이며 대부분 자국내 설비 증설을 꾀한다.
설비 투자는 한국업체가 강세를 보이는 D램 대신 플래시메모리, S램, 개별소자(디스크리트) 등 정보가전용이나 통신용 반도체에 집중됐다. 부가가치가 높은 시장에 주력해 생산 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업체들은 그동안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지역 국가에 투자를 확대해왔기 때문에 이처럼 자국내 생산에 주력하는 것은 한국, 대만 등 후발 경쟁업체들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투자 재개한 한국 =IMF이후 중단되다시피했던 한국 반도체업체들의 투자 열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올해 투자 규모만 11조원 이상으로 사상 최대 투자가 예고돼 있다.
삼성전자는 대용량 D램 전용 생산라인에 이어 비메모리 생산라인에 대한 신규 투자를 결정했으며 현대전자도 이천, 청주, 구미 공장의 D램과 비메모리 생산설비의 확충에 나섰으며 파운드리전문업체를 선언한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가 각각 설비 보완과 신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반도체 생산규모는 내년 하반기에는 올해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업체들은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신공장 건설과 설비 보완에 나설 방침이다.
한국 반도체업체들은 이같은 생산 확대를 통해 대만 업체들을 추격을 따돌려 반도체 생산 대국의 아성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맹추격하는 대만 =대만 업체들도 수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은 물론 D램 공장의 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충해 반도체 생산 강국의 야심을 키워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UMC는 아시아 반도체업체로는 처음 12인치 웨이퍼 공장 건설에 착수했으며 윈본드, 파워칩, 프로모스, 난야 등 D램 업체들도 한국과 일본 업체에 앞서 12인치 웨이퍼 공장을 건설해 D램 생산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대만 업체들은 그렇지만 잦은 지진과 전력난 등으로 자국내 투자에 어려움이 많다. 이 때문에 최근 반도체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는 중국에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나 「양안 관계」에다 생산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당장 가시화하지 못하고 있다.
◇기지개를 편 중국 =중국은 낮은 인건비, 잠재력이 풍부한 현지 시장 등으로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이다. 지난 4월말 제주에서 열린 세계반도체협의회에서 참석한 각국의 반도체업체들은 중국 시장의 개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곧 중국 반도체산업이 앞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이번 모토로라의 투자를 계기로 다국적기업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으며 앞으로 2000년대 후반에는 중국의 반도체산업도 자립 기반을 다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전자산업의 기반 확충을 위해 반도체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상하이를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합작 투자뿐만 아니라 다국적 반도체업체의 직접 진입도 허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모토로라와 인텔의 중국 투자도 이같은 중국 정부의 방침 선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중국 현지 반도체업체들은 NEC와의 합작법인인 쇼우강(首鋼日鐵)을 비롯해 후아홍(華虹), 후아징(華晶), 벨링(貝嶺), 후아위(華越) 등이 있다.
후아홍은 NEC, 후아징은 도시바, 벨링은 프랑스 알카텔, 후아위는 후지쯔와 각각 제휴하고 있으며 가전용 IC 등 주로 비메모리 반도체분야에서 단순가공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중국내의 막대한 수요를 발판으로 생산 규모와 매출이 급증하고 있어 이들 회사는 몇년 뒤에는 한국, 일본, 대만업체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할 전망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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