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용인구 1500만명, 이동통신 가입자 2650만명,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200만명.」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을 보여주는 이 지표는 국민 1인당 가입자수로 평가할 경우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IMF와 함께 탄생한 국민의 정부가 경제를 다시 살리기 위해 취한 정책 중 하나가 정보통신(IT)산업 육성이다. 정부는 초고속국가망 구축을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지난달 개통식을 가졌으며 모든 초중고교가 초고속국가망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등 정보통신산업 기반마련에 힘써왔다.
그 결과 서비스나 인프라 측면에서는 IMF 이전과 비교해 커다란 발전을 거듭해 왔다. 타 국가보다 앞서 마련된 이러한 인프라는 향후 인터넷경제에서는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많은 기업들이 인터넷을 이용, 물류비용과 관리비용을 절감하게 될 것이고 정부의 대국민 서비스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국민의 정보화마인드가 높아짐에 따라 제2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터넷 혁명시대에 필요한 인재들도 자연스럽게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통신사업자가 추진해온 서비스 위주의 정보통신산업 육성의 과실은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장비업체에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삼성전자·LG정보통신·현대전자 등 국내 대표적인 통신장비업체들은 IMF 이후 2년동안 수익성 위주로 기술투자를 단행하다 보니 이동통신 부문을 제외하고는 경쟁력을 크게 상실한 상태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계 최고 기술수준의 서비스를 앞다퉈 도입하다 보니 국내 업체들이 파고들 여지가 더욱 좁아진 셈이다.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이 가장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동통신분야도 이제는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서비스사업권을 신청하기로 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해외 로밍, 상용화시점 등을 고려해 비동기식 IMT2000서비스를 선호하는 실정이다. 이럴 경우 이동통신시장마저도 해외 다국적기업에 고스란히 내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현황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통신장비업체 한 관계자는 『서비스산업과 장비산업은 새의 양날개와 같다』며 『골드러시 시대에 돈을 번 사람은 금광업자가 아니라 청바지 장사꾼과 금을 정제하는 데 필요한 수은장사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서비스사업자의 관심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사실 다국적 장비업체끼리 시장에서 경쟁할 경우 장비의 가격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서비스사업자가 장비 국산화를 유도해야만 전반적인 장비가격 인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장비 국산화는 장비업체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장비업체 관계자의 목소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장비업체들의 분발도 요구된다. 국내 통신시장이 해외 업체들의 각축장이 된 것은 국내 장비업체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투자를 축소·중단했던 IMF 2년간의 암흑기는 국내 통신산업을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다행히 이동통신, 초고속 인터넷 분야는 내수가 밑받침되고 있는 데다 국내 업체들이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수출경쟁력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이동통신분야는 이미 수출 효자품목으로 자리잡았으며 이어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케이블 모뎀 등 초고속가입자망 장비도 수출 유망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직 씨앗은 남아있는 셈이다.
인터넷 및 이동통신서비스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 말은 앞으로도 엄청난 금액의 투자가 계속 집행되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국내 정보통신산업이 계속 서비스 분야만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장비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정부·서비스사업자·장비업체 몫으로 남겨져 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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