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4회-해묵은 숙제:높은 불량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많은 기업이 기업구조 조정 및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경쟁력 향상에 매진해 왔고 지난달에는 IMF를 공식적으로 졸업했다는 정부의 발표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여기에다 최근 수출물량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품의 수출단가와 수입단가를 비교하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95년 기준 100)는 1년전보다 10.8% 하락한 75.3에 불과했다. 또 95년 이후 매년 낮아지고 있다.

이 지수의 악화는 국산품의 품질이 경쟁상대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뒤질 때 발생한다.

또 지난 1·4분기 중 지수는 1년전에 비해 15% 이상 나빠진 것으로 나타나 지수 하락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를 종합하면 국산 제품의 수출물량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품질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IMF를 극복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실제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품질에 대한 인식은 매우 취약하다. 한국표준협회의 「품질경영 장기 발전방향 수립 연구」에 따르면 지난 95년 우리 국민이 지불한 품질비용은 총 27조원. 그 중 품질불량 및 품질실패 비용이 17조원에 달했다.

우리나라 가전업체 생산직 사원의 20%가 AS요원이며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 226만대 중 50%인 109만대가 리콜됐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기업의 품질관리 수준이 드러난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도로건설비의 20%가 유지보수비로 지출되고 있고 하수관의 43%가 이음새 접촉 불량으로 530만톤의 하수가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대한상사중재원에 따르면 상거래 클레임의 25%가 품질불량이다. 산업 전반에 걸친 불량품으로 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심각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해 11월 전자부품연구원이 전자기기 및 부품의 국제 경쟁력 파악을 위해 실시한 현장실태조사에 따르면 국산 제품은 세계 일등품대비 가격이 90∼92%의 수준, 품질의 경우 88∼89% 수준, 기술적 측면에서는 76∼88%의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1

원천기술이 없는데다 품질관리가 엉망이어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국산 부품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세트를 만들기 위해 소요되는 부품·소재의 해외 의존도는 평균 46.4% 정도로 조사됐다. 표1

47개 세트업체에 수입부품을 사용하는 이유를 질문한 결과, 「국내생산이 없어서(28건)」 「외산의 품질이 우수해서(14건)」 「가격이 저렴해서(4건)」 「납기를 잘 지키기 때문에(1건)」 순으로 응답했다. 국내에서 조달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수입하는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국산 부품의 품질에 대한 세트업체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면 국산부품을 사용하기 위해 국내 부품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세트업체들은 수입부품 대신 국산부품을 쓰기 위해 국내 부품업체들이 품질개선에 최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세트업체들이 국산부품을 사용하는데 겪는 어려움은 품질(13건), 가격경쟁력(5건), 납기(3건), 기타(9건)로 국산부품의 낮은 품질에 가장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중소기업 10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술애로 및 기술협력실태조사」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기업의 애로를 묻는 질문에 제품의 시험검사 및 품질관리(50.1%), 설계기술 (26.3%), 생산공정(15.0%)의 순서로 대답, 대기업·중소기업의 구분 없이 품질의 문제가 전반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부품업체들이 과감히 양의 시대를 청산하고 질의 시대를 선언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전문가들은 국산 전자제품이 세계일류 제품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 누적고장률을 선진국 수준인 10%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산 제품은 5년간 100대 중 평균 25대가 고장을 일으키는 반면 일본의 경우 5년간 100대 중 평균 8대가 고장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미국산과 일본산 PC의 고장률이 각각 9%, 11%인데 비해 국산 PC의 고장률은 15%에 이른다. 중장비의 고장 발생시간도 미국과 일본 제품은 각각 1만시간, 8000시간이 걸리는 반면 국산 제품은 고작 5000시간만에 고장이 생긴다.

국산 전자제품이 해외에서 일산 전자제품에 비해 50% 이상 싸게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산 부품의 품질 수준이 낮아 완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래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완제품 업체들이 외산 부품을 선호하며 이는 곧 국내 부품업체들의 품질력 향상을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 한국산 제품은 「싼게 비지떡」이라는 굴레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제품은 그동안 저임금에 의한 저가격 정책만으로도 해외시장 개척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불량률에서 비롯된 낮은 품질 경쟁력은 WTO 출범후 국경 없는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우리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부진의 늪속에 빠뜨리고 있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품질을 향상시키기 어려웠던 것은 경쟁체제의 부재, 국내 수요에 거의 의존하는 시장 환경, 품질 향상에 대해 투자할 수 없을 정도의 영세성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 경영자의 품질에 대한 마인드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행스럽게 최근 「100PPM운동」 「싱글PPM운동」 등 품질향상을 위한 노력이 업계와 정부·학계·연구소로 번져나가고 있다. 최근의 싱글PPM전진대회에서 보듯이 많은 기업이 불량률 제로(0)에 도전중이다.

그렇지만 완제품 업체들이 바라는 수준만큼 국내 부품업체들의 품질향상 노력이 뒤따라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경영자 이하 연구부서·관리부서·생산현장 등 모든 인력이 품질을 생명처럼 여기고 품질향상에 주력하는 한편 세트업체와 부품업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산 부품의 옥석을 확실히 가려 국내 부품업체들이 품질향상을 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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