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조조정 이후 불기 시작한 대덕연구단지내 연구원 및 교수 출신의 벤처 창업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자신이 보유한 제품 생산 기술 능력을 연구 단계에서 사장시키지 않고 상품화하려는 연구원들이 점차 늘면서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달 현재 정부출연연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연구원 출신의 창업 벤처기업이 57개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해 1년 동안 연구원들이 창업한 기업 40개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100개 이상의 연구원 출신 창업 벤처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출연연 관계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전자통신연(ETRI)은 대덕단지내에서 연구원 출신 창업 기업을 가장 많이 배출한 연구소로 유명하다. 연구소 설립 이래 지금까지 총 165명의 연구원이 연구소를 떠나 기업을 창업했다. 연도별로는 90년대 초반 7∼8개에 그쳤던 창업 기업이 90년대 후반 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연구소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지난 98년에는 37명의 연구원이 벤처를 창업했으며 지난해 28개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28명의 연구원이 벤처를 창업하는 등 연구소를 떠난 벤처창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체 창업기업 가운데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창업한 연구원은 77명이었으며 독자적 창업 기업은 88개로 집계됐다.
지난 80년과 87년 각각 삼보컴퓨터와 엘렉스컴퓨터를 창업한 이용태 회장과 이윤기 회장이 ETRI 연구원 출신이며 이 회사들은 현재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코스닥 등록 기업인 핸디소프트 안영경 사장과 서두인칩 유영욱 사장, 아펙스 김상호 사장도 ETRI 연구원 출신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달 말 코스닥에 등록 예정인 하이퍼정보통신의 최성수 사장과 솔빛미디어의 문의춘 사장, 아라리온 정자춘 사장도 모두 ETRI에서 배출해 낸 인물이다.
과기원(KAIST)은 학교 졸업생들의 벤처 창업 등 사회 진출이 눈에 띄게 늘면서 교수들의 창업도 최근 들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해 5월 조규형 교수(전자전산학과)가 「에이탄카멘」이란 벤처회사 창업을 계기로 김병윤 교수(물리학과)와 한인구 교수(테크노 경영대학원)도 각각 「울트라밴드 파이버 옵틱스」와 「크레디트 사이언스」란 벤처를 창업했다. 올해 이같은 교수들의 창업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정윤철 교수(전자전산학과) 등 8명의 교수가 벤처에 뛰어들었다.
이밖에도 전자전산학과 오영환·이흥규·한태숙·양재헌 교수 등 4명이 KAIST 연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벤처 창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생명연에서는 현재 바이오 벤처의 선두로 꼽히는 바이오니아 박한오 사장과 인바이오넷 구본탁 사장이 이 곳 연구원 출신이다. 특히 올해에는 연구소내 겸직 허용 제도를 활용해 성문희 박사가 바이오리더스를 창업한 데 이어 반재구 박사와 박호용 박사 등이 각각 제노포커스와 인섹트바이오텍 등을 창업하는 등 15명의 현직 연구원이 벤처창업을 택했다.
표준연에서는 지금까지 총 22명의 연구원이 벤처 창업자로 나섰다. 지난 89년 원다레이저를 창업한 원종욱 사장과 덕인의 우인훈 사장, 오롬정보의 이상헌 사장 등에 이어 대덕연구단지에서 처음으로 제3시장에 등록한 동양엔터프라이즈 정종호 사장도 표준연 출신이다.
원자력연은 지난 97년 이래 모두 14명의 연구원이 벤처를 차렸다. 비파괴 검사 전문기관으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평가받고 있는 카이텍의 박종현 사장은 97년 당시 원자력 연구원 25명과 공동으로 회사를 창업,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에는 제스텍의 변기호 사장 등 연구원 출신 3명이 벤처를 창업했다.
기계연구원에서는 지난 94년 엘트웰 아이앤씨를 차린 제양규 사장을 시작으로 총 6명이 벤처 창업자로 나섰다. 지난 5∼6월에는 홍순철 연구원과 김영주 연구원이 각각 템스 및 디아이텍이란 벤처를 창업했다.
항우연은 지난해 창업한 서원무인기술 박주원 사장과 올 2월에 창업한 바이믹스코리아의 민경주 사장 등 2명이 연구원 출신이다. 화학연도 보광화학 민주홍 사장과 코리아폴리테크 신동근 사장 등 2명의 벤처기업인을 배출했다. 이밖에도 에너지연에서는 이만근 박사가 유일하게 태양 전지 등 관련제품 개발업체인 솔레이텍을 차렸다.
갈수록 늘어나는 연구원의 벤처 창업. 이에 대한 찬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출연연에서는 창업을 위해 빠져나가는 연구원이 증가함에 따라 가뜩이나 모자란 연구개발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겉으로는 연구원 창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사실상 속내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출연연의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벤처정책이 다분히 즉흥적이어서 연구소에서도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출연연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벤처육성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단 구체적이고 안정적인 벤처육성 정책이 선행돼야만 연구소에서도 마음놓고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출연연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모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원들의 잇단 벤처 창업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이들의 의지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벤처육성 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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