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창 부국장대우 생활전자부장 wcyoon@etnews.co.kr
요즘 융합이란 뜻을 가진 퓨전(fusion)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그간 록이나 클래식 등 다른 분야와 융합된 재즈 음악을 설명할 때 주로 쓰였던 퓨전이 이제는 우리 삶의 전방위에 걸쳐 하나의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TV에서는 교양과 오락, 드라마와 코미디가 융합된 새로운 장르가 잇따라 탄생하고 대중음악계에서도 전혀 낯선 록음악과 랩이 결합한 음악이 인기를 얻고 있다. 미술에서도 평면과 입체가 결합하는가 하면, 미술적 요소와 비미술적 요소가 결합해 새로운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퓨전 현상은 문화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우리의 일상 생활 어디서든지 이같은 퓨전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 음식을 결합한 퓨전 음식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문화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 늘어나는 것 역시 요즘의 추세다.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이 올해 선보이고 있는 새 자동차 모델도 퓨전 현상이 뚜렷하다. 승용차와 승합차, 승용차와 트럭, 경차와 미니밴의 경계를 무너뜨린 퓨전 자동차들이 잇따라 생산되고 있다.
전자제품에도 예외없이 퓨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여러 가지 기능을 하나로 묶은 복합기능의 퓨전 전자제품들이 속속 등장,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퓨전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이동전화다. 이동전화에 MP3기능을 넣은 MP3폰을 비롯, TV폰, 카메라폰 등 다양하다. 한 벤처기업이 이동전화·오디오·인터넷 전화용 헤드세트의 기능을 하나로 합쳐 개발한 다기능 멀티이어폰 이어플러스는 음악을 듣다가 전화가 오면 자동으로 오디오음이 꺼지고 전화 벨소리로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첨단 기술은 아니지만 이동전화, 오디오용 이어폰을 함께 들고 다니지 않아도 돼 벌써 예약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또 프린터에 오디오 기능과 라디오가 결합된 제품, PC와 연결해 다양한 부가기능을 즐길 수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 오디오도 선보였다.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TV에 세트톱박스를 장착해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한 인터넷TV, 컴퓨터를 장착한 디지털 냉장고, 에어컨·공기정화기·온풍기를 하나로 합친 복합 에어컨도 개발되고 있다.
이제 비디오일체형 TV는 퓨전의 고전이 됐다. 요즘 선보이는 퓨전 전자제품들은 대부분 「가전기기」와 「정보기기」라는 이질적인 기기를 융합한 제품이다. 물론 이들 퓨전 제품중 일부 제품은 완전한 「하나로」라기보다는 「따로 또 같이」의 중간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점을 감안 퓨전 전자제품을 개별적인 가전기기·정보기기에서 정보가전기기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나온 실험적인 제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퓨전 전자제품은 실험적 돌파의 한 방편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세대의 구매 취향을 맞춘 제품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MP3폰을 보면 신세대의 취향에 맞게 언제 어느 때든 오디오를 들을 수 있고 전화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오디오는 오디오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성 세대와는 구분된다. 또 복합형 오디오 제품은 세련된 디자인이나 실용성을 차치하더라도 패트네임이 「우리들만의 공간」을 뜻하는 「@ZIT(아지트)」다.
퓨전 가전제품의 본질은 서로 다른 기기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융합화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퓨전」이라는 색다른 용어로 표현되는 순간 「새롭고 고급스러운 그 무엇」을 연상시킨다. 또 하나는 디지털시대로 바뀌면서 아날로그시대에 따로 분리돼 있었던 것들을 융합시키는 새로운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근대를 추구하면서 살아온 키워드는 융합이 아니라 그 반대말인 「분별」이었다. 분별이라는 말은 한자말 그대로 갈라서(分)별(別)개로 만드는 일이다. 산업주의에서 시작한 서구 근대주의는 모든 것을 대립체계로 갈라놓고 별개의 것으로 떼어 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경제·문학·사상 등 어느 것을 보아도 이 분별 의식이 반영돼 있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세계가 등장하면서 융합 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개인과 집단과 세계의 모순이 서로 융합돼 있는 공간인 인터넷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별개였던 교육과 놀이를 합쳐 에듀테인먼트(에듀케이션과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를 탄생시킨 것은 이의 한 단면이다.
아무튼 새 천년 들어 전자업계에 불고 있는 퓨전 바람이 유행에만 편승, 단순히 겉핥기에 끝난다면 큰 의미가 없다. 기존의 것들을 융화시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정신으로 연결될 때 그것은 상술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전제품의 창조인 셈이다. 국내 전자업계가 세계 정보가전시장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것도 퓨전을 어느 정도 충실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기계연, '생산성 6.5배' 늘리는 600㎜ 대면적 반도체 패키징 기술 실용화
-
2
네이버멤버십 플러스 가입자, 넷플릭스 무료로 본다
-
3
KT 28일 인사·조직개편 유력…슬림화로 AI 시장대응속도 강화
-
4
삼성전자, 27일 사장단 인사...실적부진 DS부문 쇄신 전망
-
5
K조선 새 먹거리 '美 해군 MRO'
-
6
인텔, 美 반도체 보조금 78.6억달러 확정
-
7
갤럭시S25 울트라, 제품 영상 유출?… “어떻게 생겼나”
-
8
GM, 美 전기차 판매 '쑥쑥'… '게임 체인저' 부상
-
9
삼성전자 사장 승진자는 누구?
-
10
美 캘리포니아 등 6개주, 내년부터 '전기차 판매 의무화'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