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시실리아·제푸리 그뤽쉔크 공저
정순원 옮김
21세기북스
『그린스펀이 있는데 누가 금(金)을 필요로 하는가.』-뉴욕타임스.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는 증시의 오후 장세를 반전시킨다.』-파이낸셜타임스.
세계 금융계는 요즘 이른바 「그린스펀 효과(the Greenspan Effect)」에 전율하고 있다. 그린스펀의 공식연설이 있는 시간이면 전세계 금융권과 투자자들은 모든 의사결정을 유보한 채 그의 입을 주시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에서 신비로운, 그러나 아무리 고쳐 들어도 명료하고 강력하기 그지 없는 말들이 쏟아진다. 연설이 끝나는 순간, 사람들은 그린스펀의 발언 내용 구절구절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계산하며 부산스러워진다. 이것이 곧 그린스펀 효과의 시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 그는 타이거 우즈처럼 최연소로 마스터스를 제패하거나 마크 맥과이어처럼 수십년간 깨지지 않던 최다 홈런기록을 경신한 적은 없다. 그의 직업은 선거로 뽑힌 유능한 대통령이나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 혹은 야심찬 기업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돈나·빌 게이츠·테드 터너·마이클 조던처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이 시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아니 존경받으며 끊임없이 세계를 움직이는 「금융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일찍이 케인스가 「음침한 학문」라고 불렀던 메마른 포도밭을 열심히 일구며 동료들과 매력없고 난해한 문제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고교시절 수학에 재능이 있었지만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아 줄리어드 음대를 다녔다. 한때는 베이스 클라리넷과 색소폰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당시 유명했던 헨리 제롬악단의 주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득 어느날 그는 이렇게 회의한다. 『주위에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음악가들이 부지기수 아닌가.』 1947년 21살의 나이로 그는 뉴욕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경제학은 원래 수학을 잘했던 그의 적성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이것이 그가 경제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다.
물론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모두 그린스펀처럼 경제대통령에 「추대」되는 것은 아니다. 「그린스펀 효과」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제학자들이란 대체적으로 과감한 결단으로 칭송받기보다는 항상 양다리를 걸치다가 조롱당하기 일쑤다. 예컨대 『한편으로는…』이거나 『반면…』 식으로 항상 빠져나갈 여지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단골 수법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트루먼 대통령이 『어디 「한편」만 드는 경제학자는 없나』며 비아냥거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린스펀은 87년 연준의장에 오른 뒤 현재까지 13년간 재임하며 평균 3주에 한번씩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분명한 견해를 연설형식으로 밝혀왔다. 그 대상은 금융계 인사, 경제학자, 대학생, 시민단체, 일반 청중들로서 총원고량은 3500장이 넘는다고 한다. 이 연설문들에는 당연히 광범위한 경제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명쾌한 견해들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지난해 말 출판된 「그린스펀 효과」는 바로 이 연설문들을 주된 텍스트로 해서 「왜 그린스펀 효과인가」를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연설문을 주제별로 나누고 다시 문장 단위로 잘라 이를 세세하게 풀어놓은 것이 이 책의 대강이다. 이 한권의 책이면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오늘날 미국의 경제정책과 사회적 이슈들을 양파 껍질 벗기듯 차례차례 손에 잡을 수 있다. 그린스펀의 해박하고 명료한 지적사고를 빌어 21세기 새로운 경제환경과 기술 혹은 금융서비스와 은행시스템의 미래도 읽을 수 있다. 그가 권하는 투자자 지침도 들어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궁극적으로 「그린스펀 효과」의 행간들을 통해 슈퍼스타 그린스펀의 철학과 그 천재성을 조명하려 한듯하다.
<서현진논설위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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