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흐름읽기>가상공간에서 결혼식·장례식 치른다

갈수록 바빠지는 세상살이 속에서 엄격하게 치르던 각종 예식행사도 간소화되는 추세가 역력하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상생활의 상당부분이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지는 가운데 우리민족이 인륜지대사로 중요하게 여겨왔던 예식문화도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다.

화제성 뉴스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인터넷 결혼식과 사이버 납골당 등의 출현소식을 접하다 보면 전통적인 예식문화가 인터넷의 물결을 타고 어디까지 변질될 것인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요즘 생기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관련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단순한 정보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오프라인 예식과정의 진지함을 사이버 공간에서도 유사하게 재현하는 가상현실(VR) 서비스 쪽으로 뚜렷이 이전하고 있다.

우선 잠재시장 규모가 큰 결혼식 관련 인터넷 서비스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보했다.

웹 카메라를 이용한 결혼식 실시간 중계는 물론 전자메일 청첩장, 동영상 포토앨범, 온라인 축의금 접수 등으로 제한적이나마 실제 결혼식 과정을 사이버 공간에서 재현하고 있다.

특히 30분마다 한 커플씩 찍어내듯 결혼예식을 처리하는 예식장문화 속에서 인터넷상에 영구적인 멀티미디어 결혼사이트를 구축한 신혼부부들은 나중에 찾아온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이 섞인 칭찬을 듣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예 3차원 VR 예식장을 만들어 아바타를 이용한 입체적인 채팅공간을 제공하려는 시도도 진행중이다. 한솔CSN은 10월부터 인터넷상에서 가상예식장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인데 여기서는 멀리서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끼리 가상의 예식장에서 만나 복수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결혼식 관련 웹사이트가 방문자 혼자 들어와 구경만 하고 나가는 썰렁한 분위기였다면 3차원 VR 환경의 도입으로 인해 실제 사람이 돌아다니는 결혼식장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듀오·닥스 등 결혼정보업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올해 말쯤에는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인터넷 예식장을 잡고 멀리서 찾지 못하는 친지들을 위해 결혼식 장면을 재현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주말에는 서울 도심의 초대형 PC방에서 치러진 한 벤처기업가의 인터넷 결혼식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당시 시골에서 올라온 일가 친척들 중 일부는 이벤트 행사처럼 치러지는 생소한 식장 분위기에 불편해했다는 후문이다.

사이버 공간을 이해 못하는 연로한 기성세대들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성숙한 인터넷 결혼문화가 형성되려면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엄숙하기로 따지자면 관혼상제 중 으뜸인 장례식에도 인터넷이 스며들고 있다.

국내유일의 장례 관련 벤처기업인 인터소울(http://www.intersoul.co.kr)에 가보면 망자를 보내는 장례과정에 어떻게 인터넷이 활용되는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사이트는 기본적인 장례 관련 정보 서비스 외에도 다음달 중순부터 이른바 사이버 명당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풍수지리학을 토대로 명당인 지형을 3차원 공간으로 재현한 사이버 명당에서는 각종 제사도 지내는 것은 물론, 고인의 경력과 평소의 동영상까지도 재현해 마치 실제로 산소에서 조상을 모시는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매장이 아닌 화장과 납골당의 경우에도 마치 진짜 봉분을 만든 것과 유사한 심리적 안정감을 주게 된다.

또 해외에 거주해 고인의 무덤을 수시로 찾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산소의 전경을 실사해 보여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360도 촬영한 분묘의 동영상 및 사진자료를 해외 및 일반가정에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므로 폭우나 폭설 등 천재로 인해 산소피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벌초 서비스, 수의백화점 등 상상 가능한 장례 관련 서비스 대부분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처럼 인터넷상의 가상 산소로 찾아가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과연 조상에 대한 효를 다하는 길일까? 보수적인 기성세대는 이러한 시도를 경박하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높다.

진짜 조상의 산소는 잡초가 우거지고 형편없는 몰골이지만 자손들은 가상현실 공간에 성묘 사이트만 하나 달랑 만들어놓고 자족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곤란하다.

전통적인 예식문화가 인터넷과 만나 새롭게 바뀌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지만 예식과정에 담긴 깊은 뜻까지 훼손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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