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점유율 50% 제한, 이를 위한 단말기 보조금 차등 지급을 골자로 한 공정위의 SK텔레콤 신세기통신 인수 조건부 허용 판정은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정통부도 마찬가지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결론도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승인이면 승인이고 불가(不可)면 불가라는 똑 부러지는 판정이 아니라 조건을 내건 최종 판정이라는 점에서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SK텔레콤과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들의 엇갈린 이해를 적당히 절충한 어정쩡한 대안으로 분석된다.
특히 4.13 총선에서 야당이 제1당이 되면서 정부로서도 국회에 발목을 잡힐 만한 단서는 가급적 제공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는 것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경쟁력이나 통신시장 구조조정논리를 앞세워 「무조건 승인」할 경우 PCS사업자들은 물론 야당으로부터 「특혜 시비」의 빌미가 될 것이고 불허하자니 국경없는 무차별 경쟁체제로 진입한 세계 경제의 대세를 거스르는 「우물안 개구리」식 판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공정위의 26일 판정으로 통신시장 구조조정의 첫 단추가 꿰어진 셈이며 내달쯤으로 전망되는 한솔엠닷컴의 인수합병, IMT2000사업자 선정을 앞둔 하나로통신과 파워콤의 지분 경쟁 등 주요 기간통신사업자들의 구조조정이 급류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남은 것은 공정위 결정에 따른 사업자간 득실을 따지는 일이다.
SK텔레콤에 이번 결정은 약(藥)이 될 수도 있고 독(毒)으로 변할 수도 있다. 011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50%까지 끌어내리라는 판정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이와 함께 2000개가 넘는 전국의 대리점들이 집단 반발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지속적인 이윤을 보장해 주느냐도 숙제다. 마케팅 부문의 묘책이 수반되어야 하는 난제중 난제다.
PCS에 비해 훨씬 적은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당장 신규 가입자가 끊기게 되고 이는 곧바로 대리점들의 수익 악화로 이어져 유통망이 흔들리는 사태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가입자 가운데 악성 연체자 등을 솎아 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민원」에 시달릴 공산도 크다.
또 사용 충성도가 비교적 높은 SK텔레콤 가입자보다는 신세기통신 가입자들이 대거 이탈하거나 신규 확보에 애를 먹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어서 이 역시 골치 아픈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영업의 속성이 계속 페달을 밟아주어야만 굴러가는 자전거에 비유되는 판에 SK텔레콤으로서는 보조금 지급에 의한 신규 가입자 확대라는 페달을 밟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속이 더욱 탄다. 그래서 011은 이번 인수에 3조원 이상을 쏟아 붓고 기껏 점유율 50%를 맞춘다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 절반인 1조5000억원만 마케팅 비용으로 투입하면 50%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문제가 없는 판에 3조원을 들여 017을 인수하는 것은 「밑지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11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제공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에 머문다는 것은 마케팅 비용의 절감을 의미한다. 1조원 규모에 이르는 단말기 보조금을 통화품질 향상, 기존 가입자 서비스 제고 등에 투입할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SK텔레콤이 비록 공정위의 지침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시장 점유율이 내려가더라도 기존의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에 서비스 품질을 한 차원 높이는 투자까지 가세한다면 장기적으로는 IMT2000 시장에서도 현재와 같은 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잠재적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아직도 신규가입자 끌어모으기에 전력해야 하는 PCS사업자들에 비해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신세기가 이용하고 있는 주파수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011에는 위안거리가 된다.
이미 SK텔레콤은 IS95C를 업계 최초로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경쟁자들이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보조금을 출혈 지급하는 동안 011은 통화품질을 내세우며 달려가고 있다. 공정위 판정은 적어도 011에 관한 한 명과 암이 교차한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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