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항해하는 네티즌은 하루에도 수십건 아니 수백건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중에 계약에 얽매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이 어느 경매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구입한다고 하자. 경매사이트 이용 약관에는 십중팔구 이를 통해 구입하는 물건에 대해 경매사이트 운영자는 책임이 없고 물건의 하자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구입자가 진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상세히 읽고 물건을 구입하는 네티즌이 얼마나 될까. 이를 읽지 않고 경매사이트의 지명도만 믿고 구입한 물건이 하자가 있는 경우 경매사이트 운영자에게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는 바로 이러한 이용 약관이 사이트 운영자와 사이트 방문자 사이의 계약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지(이러한 계약을 통상 웹랩 어그리먼트라고 부른다)의 문제다.
웹랩(Webwrap) 계약의 실효성 검토에 앞서서 여러분들이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경우 흔히 보는 슈링크랩 계약(제품 포장을 뜯으면 약관 내용에 동의하는 것으로 본다는 내용의 계약)의 실효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웹랩계약의 실효성 여부에 대한 논의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슈링크랩 계약의 유효성을 다룬 국내 판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미국 선례의 경향을 잠시 보기로 하자.
현재까지 미국 법원의 경향은 슈링크랩 계약전에 당사자간의 약정(예들 들면 소프트웨어가 전달되기 전에 전화·방문 등으로 판매자가 이 제품은 이러이러한 것이고 계약조건은 이러하다는 등의 상세한 설명을 하고 구입자가 이에 따라 구입하기로 한 경우)이 있던 경우라면 소프트웨어 표지 등에 기재되어 있는 문구가 이미 성립한 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돌려 말하면 구입자와의 약정이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소프트웨어를 구입했다면 표지 등에 기재되어 있는 슈링크랩 계약에 구속된다는 것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제품의 포장을 뜯는다는 적극적인 행위가 관여된 경우라고 해도 미국 법원은 모든 슈링크랩 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이용 약관은 어떠한가. 「I agree」를 클릭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치 경우도 있다. 또 이용 약관이 홈페이지의 구석에 있어서 굳이 이를 보지 않고도 콘텐츠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유니폼 커머셜 코드(UCC)의 개정 내용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슈링크랩 계약의 유효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다음을 들고 있다. 첫째, 사용자들이 계약조건을 검토할 기회가 있었는가. 둘째, 계약조건에 사용자의 승낙을 위해 어떠한 행위(예를 들면 제품 포장을 뜯는 행위)가 필요한지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가. 셋째, 사용자가 승낙을 위한 행위를 하지 않을 기회를 누린 후에 승낙을 위한 행위를 했는가가 그 기준이다.
이러한 기준을 웹랩 계약에 적용해 본다면 당사자간의 유효한 계약으로 살아남을 이용 약관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물론 우리나라 법원이 어떠한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는 두고 볼일이다).
사이트 운영자가 이용 약관을 계약으로 승격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초기화면에서 자동적으로 팝업하도록 하고, 방문자가 반드시 「I agree」 클릭행위(적극적 행위)를 한 후에야 콘텐츠에 들어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내용도 보지 않고 「I agree」 클릭을 하는 많은 이용자들의 항변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다시한번 동의하는지를 묻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사이트 운영자의 고민은 아마존의 원클릭 서비스가 사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클릭횟수가 많으면 네티즌이 싫어한다는 것일 터인데 계약으로서의 유효성에 치중할 것이냐, 신속함을 중시하는 네티즌의 성향에 따를 것이냐의 문제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리라.
<변호사·swhan@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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