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동체로 가는길>1회-국어정보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갈라지고 쪼개진 한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시대를 향한 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그러나 분단 50년은 길었고 그만큼 남과 북의 장벽은 높고 험하다. 정치·경제·문화·환경이 서로 다르며 우리말은 한글과 조선어로 나뉘어 있다. 말조차도 서로 다른 남과 북이 분단 이전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단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문화·경제·정치 등 각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말 그대로 산더미가 아닐 수 없다. 당장에 사람과 물자가 움직일 수 있는 철도를 잇고 항만을 건설하고 문화 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통일을 향한 징검다리가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맞을 통일시대가 정보화의 물결이 지배하는 21세기의 한 가운데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의 통일 노력도 정보통신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과거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TV와 통신이 막대한 공헌을 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남북 교류와 통일을 위한 노력은 정보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고 방송·컴퓨터·인터넷분야에서 서로 다른 표준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21세기 정보화시대에서 그 어떤 통일노력과 경제협력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 정보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기구 구성과 함께 6월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정식 의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함께 정보공동체로 가는 데 꼭 필요한 과제들을 기획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

국어정보화<1>

『정보화 분야에서 분단 50년을 봉합하려면 50년 이상이 더 필요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정보화의 수준에서부터 각 분야별 표준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습니다. 정보화의 기초가 되는 국어 정보처리분야에서조차도 통일된 표준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보면 정보통신의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남북의 정보통신 교류를 추진해온 국어정보학회 진용옥 회장(경희대 교수)은 『정보화의 초석이랄 수 있는 국어정보 처리분야에서조차 남북 통일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남과 북의 정보화 단절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보통신분야의 기초가 되는 우리말 정보처리분야에 있어 지난 50년 동안 남과 북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단군이라는 조선글 처리프로그램과 창덕이라는 문서편집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우리가 쓰는 한글이나 워드와 같은 프로그램과 우리말 처리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한글 자모 순서, 컴퓨터 처리를 위한 한글코드, 컴퓨터 자판배열 등이 다르다. 북한이 남한의 한글과는 맞춤법이 다른 조선어를 사용하고 있고 50년 동안의 분단으로 생겨난 언어의 이질감까지 감안하면 한글과 조선어는 같은 우리말임에도 컴퓨터는 전혀 다른 언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에 통신설비와 산업시설 등을 설치해 경제공동체를 구축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의 신경망에 해당하는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상당 부분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우리말 처리에 있어서 호환성이 부족한 문제는 문화미디어의 제왕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터넷 또한 무용지물로 만들 뿐 아니라 휴대폰을 비롯한 통신·방송 등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우리말 처리문제가 통일시대 정보통신 각 분야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판단에 따라 그동안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남북 통일안 마련작업이 추진돼 왔으며 미미하지만 성과도 있었다. 국어정보학회와 북한의 조선콤퓨터쎈터는 지난 94년부터 매년 「우리말컴퓨터처리국제학술대회(ICCKL)」를 개최해왔으며 96년에는 전산처리용 자모순서 통일안과 통일규격의 컴퓨터 자판배치안을 합의 제정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우리말 컴퓨터 용어사전인 「남북공용컴퓨터사전」을 발간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북한의 조선컴퓨터쎈터와 문서요약 프로그램과 오피스 프로그램 등을 공동으로 개발키해 남북 공동의 워드프로세서가 개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앞으로 북한특수를 기대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속속 남북 통일 워드프로세서의 개발을 추진할 것으로 보여 우리말 정보처리분야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지근한 편이다. 남북 정상회담 소식이 발표된 정부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대북사업을 발표하고 있지만 정부부처 어느 한곳도 우리말의 표준화와 정보처리에 관한 계획을 발표한 곳이 없다.

우리말 정보처리 문제는 경제·문화적인 측면에서 파급효과가 클 뿐 아니라 디지털시대를 향한 정보공동체 구성의 토대가 되는 만큼 문화부·정보통신부·교육부 등 관련부처 공동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기회에 각 부처별로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한글 정보처리 프로젝트를 통합해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남북이 정보공동체를 향한 민관 차원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비로소 통일에의 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이창희기자 changy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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