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출연연연구회 출범1년>7회-에필로그

연구회체제로 출범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출연연구기관의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벤처창업 붐으로 일부 정보통신과 바이오 분야 연구원에 대한 주가가 크게 올랐다. 어딜 가나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고위공무원이 벤처기업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연구원들이 창업하는 경우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연구풍토도 그렇고 규모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출연연의 연륜도 길게는 30년 가까이 되었으며 또한 기능도 다양화되고 복잡해졌다.

연구회체제로의 개편은 80년대 초에 있었던 인위적인 기관 통·폐합이 득보다 실이 더 많았던 데 비해 연구기관에 대해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는 등 운영체제 개편을 통해 새로운 연구분위기 조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출연연의 전략경영능력 부족, 우수 연구인력의 유치 어려움, 경쟁지향적 인사제도 등 그동안 연구경쟁력을 저하시켜온 문제점들이 연구회체제의 출범으로 대표되는 출연연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 것도 사실이다.

연구회의 출범 배경으로 당사자인 기획예산처는 급변하는 과학기술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소 또는 연구분야별로 의사결정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고, 기술의 시스템화에 따라 관련분야의 학제간 연구가 필요해 유기적인 협력연구가 필요하며, 창의적인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정부부처와 출연연간의 연결고리를 정리하는 것 등을 통해 출연연의 연구효율성 향상을 들고 있다.

그러나 출범 1년을 지나면서 당초 기대처럼 연구회가 그 기능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출연연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연구회체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출연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연구사업의 경우 연구사업을 소신대로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자율권이 제한돼 있다.

연구기관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연구를 어떤 팀을 구성해 추진할 것인가라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소신껏 추진하도록 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현재 각 정부의 연구비 배분을 연구프로젝트의 선정에서부터 연구책임자 선정까지 정부부처가 직접 관장하고 있어 출연연 경영진의 의사반영이 완전히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학제간 연구 등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정부발주 연구과제 선정에 있어 출연연의 특성을 무시한 채 출연연·대학·기업을 동일선상에 놓고 경쟁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는 출연연 고유특성을 정부 스스로가 무시하는 것으로 연구주체들간의 이질적인 경쟁보다는 연구권역 내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출연연의 기능과 특성도 연구소별로 기능에 따라 체계적으로 다시 분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생명연의 경우 인간유전체연구 등 새롭게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생명공학연구원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사업특성이 강한 연구소는 아예 민영화하든지 사업성을 적극 키워주고 그렇지 못한 기초분야는 국가장기연구사업으로 정해 국가 연구소로의 전환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2025년 과학기술 장기비전」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연구개발 투자규모를 63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 우리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을 세계 7위로 끌어올리는 등 과학기술 주도의 국가경영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지식경제리포트에 따르면 선진국 및 주요 경쟁국 47개국 가운데 한국의 연구개발환경 경쟁력지수는 47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연구개발 주체들이 기술개발을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연구원의 자율과 유연성을 확보해주는 것이야말로 연구원의 창의력과 연구생산성의 극대화로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정부가 이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비 배분과 회계처리에 있어서의 경직성, 복잡한 행정절차 등은 연구의 유연성을 침해해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출연연 연구원들간에는 「일단 프로젝트를 물면 10년은 간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대부분의 연구과제들이 사전검증 없이 선정되며 중도 탈락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당연히 연구과제의 성과물이 제대로 나올리 없다.

최근의 연구성과물을 실용화하는 연구원 벤처창업 붐은 정보통신이나 바이오 등의 일부 분야에 불과하다.

현행처럼 대부분의 정부부처가 연구기획 사업을 통해 연구방향을 설정한 후 과제공모를 통해 개별연구원들이 제출한 연구제안서를 평가, 연구과제 수행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에서는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출연연 연구원들은 연구회체제가 당초 의도대로 제대로 정착되려면 연구비 분배제도를 고쳐 미국의 「B마이너스 연구제」처럼 출연연마다 과제당 3, 4개씩 시범연구사업을 벌여 개별 연구원들의 연구제안에 따른 연구성과를 평가한 후 가장 적절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개별연구자를 선정하고, 일단 본연구가 착수되면 시범연구사업비의 5∼6배에 달하는 대규모 연구비를 집중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구과제 제안서에 연구정력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고 과제를 따고나면 그만인 현재의 연구개발시스템으로는 연구회가 아니라 연구회의 상전을 모셔다 놓아도 출연연 자율경영과 연구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과학기술팀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장관진기자 bbory5@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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