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디지털경영>섬유·의류 분야

국내 의류 분야의 업무 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전 근대적이다. 의류는 흔히 전체 제품 중 30%만 제값을 받아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철이 시작되기 6개월 이전에 신제품을 만들어 놓고 운이 좋아 잘 팔려 대박이 터지면 큰 돈을 벌고 안 팔리면 세칭 나까마라는 덤핑 상인에게 넘기면 그만이라는 것이 의류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소비자와 최종 채널인 백화점도 옷이 안 팔리면 잘 팔리는 옷으로 대체해 버리고 재고가 쌓이면 협력업체에 떠넘기면 되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눈치다. 그렇다고 무작정 옷을 대량 생산해 놓고 요행을 바랄 수도 없다. 팔리지 않으면 대부분의 생산 물량을 헐값에 팔거나 재고를 떠 안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의 옷도 1년만 지나면 80∼9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실정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파로 섬유와 의류업체가 가장 먼저 쓰러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생산해 판매하다 남은 재고가 문제였던 것이다.

섬유 산업의 전자상거래는 이같은 프로세스를 혁신하자는 것이다. 설계·제조·수주 및 납품에서 기업 내부 프로세서·생산·유통·물류·고객 관리까지 모든 비즈니스 과정을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한 모델로 바꾸자는 전략이다.

섬유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라 섬유 분야 전자상거래는 모든 중소업체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 인프라와 서비스 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 전자상거래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요소 기술을 확보하고 섬유 의류 패션업체가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 구축이 골자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전자상거래 도입과 활용을 선도, 지원하기 위한 단계별 교육과 컨설팅 체제가 뒤따른다.

섬유분야 전자상거래는 섬유산업연합회가 주도하고 있다. 연합회는 먼저 중소기업과 선도기업을 포함한 전자상거래 추진 시범 그룹을 구성해 시범 품목을 선정, 성공 모델을 만들고 이를 전업체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상품 회전율을 높이고 재고를 줄이자는 의도다. 이는 「신속대응시스템(QR)」으로 요약할 수 있다.

QR는 생산과 유통의 거래 당사자가 상호 협력해 하나의 표준화한 상품 코드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판매 시점에서 고객의 구매 성향과 매장내 정보를 상호 교류하는 전략적 시스템을 말한다. 정보 공유를 통해 각종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자는 데 뜻을 두고 있다.

섬유산업은 직물과 의료 제품 디자인 생산 유통과 관련된 모든 기업체와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좁은 의미로는 어패럴 산업만을, 넓은 의미로는 섬유 소재와 의류 제조업, 섬유소재와 의류 판매업, 부자재 제조 및 판매업, 액세서리 등 토털 패션 관련업, 패션, 광고, 컨설팅 등 보조업을 총괄한다. 섬유 산업의 QR시스템은 원자재부터 판매까지 업무 흐름에 따라 정보기술(IT) 솔루션을 적용해 나가는 일이다.

섬유산업연합회는 오는 2003년까지 한국형 QR시스템을 개발해 보급한다는 목표로 지난 98년부터 사업을 진행중이다. 이미 2단계 사업까지 마무리됐으며 올해부터 내년까지 3단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3단계에서는 QR시스템 센터의 시범 서비스와 기업과 업종간 QR성공사례 발굴 및 이를 관련업계에 보급하는 것이 주된 사업이다. QR시스템 센터는 표준 바코드와 데이터베이스 서비스, 기업간 전자문서교환(EDI) 중계서비스, 전자상거래 지원 서비스를 비롯해 QR전문인력을 집중 양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오는 2001년부터 시작되는 4단계 사업에서는 시장 수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특히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 응용정보 및 EDI와 데이터베이스 카탈로그 연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QR의 핵심은 제품 흐름에서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낮은 재고율, 저가격을 유지할 수 있으며 도소매업의 정보 네트워크를 형성해 물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리드 타임 단축 등 기회 비용을 최소화해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QR는 곧 섬유산업 전자상거래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섬유업계가 서로 경쟁적인 거래 관행에서 탈피하고 섬유 원사, 원단 제조업자와 어패럴 제조사, 유통업자 등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자는 게 목적이다. 이는 각 업체가 적대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로 맺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문제점과 대책/

효율적인 섬유 분야 전자상거래를 위해서는 몇가지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전자상거래의 최대 강점은 정보 전달의 신속성이다. 하지만 정보 전달에 기초한 물류 조달 체계가 비효율적이거나 물류비 과다로 물건값이 비싸지면 전자상거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즉 신속한 물류 체계 인프라가 선행돼야 한다.

물품 구입 후 대금 결제는 지금까지 대부분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해 결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보안 문제를 의식해 이를 꺼리는 실정이다. 섬유 역시 전자상거래에 대한 신뢰성이 우선돼야 한다.

브랜드 마케팅도 문제다. 해외 유명업체와 제휴한 국내 브랜드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거부하는 추세다. 온라인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국내 브랜드는 구매 속성상 패션관련 다른 업종과 쉽게 파트너십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패션 의류와 구두업체가 공동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거나 액세서리 업체와 수급 문제를 상호 조절하기가 힘들다. 다른 업종과 공동 영업 전략 구축에 따른 수수료, 품질과 사후관리(AS), 조직 체계와 기업 비밀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문화와 정서의 차이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사업 성공을 위해 필요한 파트너라는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과중한 조세 부담이다. 국세청 표준 소득률에 따르면 온라인 정보 서비스업·정보제공사업·데이터베이스사업의 소득세율은 40% 내외로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의류업체는 온라인 사업 진출을 주저하고 있다.

섬유·의료 산업에서 효과적인 전자상거래를 위해서는 불명확한 관계를 없애고 투명한 거래 관계를 확립해야 한다. 또 서로 힘을 모을 수 있는 전략적 제휴도 필요하다. 공동 전략에는 수발주 데이터 교환부터 상품·생산·물류·판매 계획 등 비즈니스 영역 전반을 포함한다. 여기에 사이버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체제와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 구축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해외 전자상거래 추진 현황/

미국과 일본의 섬유 분야 정보화 사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난 85년부터 QR를 실시한 미국은 산업계·정부·학계가 힘을 결집한 「DAMA 프로젝트」로 요약할 수 있다. DAMA 프로젝트는 지난 93년 설립된 미국 섬유 공동체인 암텍스(AMTEX)가 주도하고 있으며 지난 95년부터 올해까지 총 2000만 달러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DAMA 프로젝트의 목표는 미국의 시장 점유율을 10%대로 회복하고 과잉 재고, 마크 다운, 결품 등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분야를 줄이는 것이다. 또 고객 기호를 최대한 활용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전자상거래 시장의 기반을 정비하자는 의도다.

일본은 지난 94년부터 통상산업성과 섬유구조 개선사업협회가 QR기반 정비사업을 실시했다. 일본에서는 QR를 보급하기 위해 기반 인프라가 필요했고 이를 국가 사업으로 추진하게 됐다.

일본 표준코드 보급단체인 JAN을 중심으로 의류상품 카탈로그를 구축중이며 의류상품 마스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통 13개사, 의류 63개사가 가입돼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세계적인 표준 체계인 EAN-128을 코드로 채택해 표준EDI와 연계, 직물부터 유통업체까지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QR 실현을 위해 우선 사업의 하나로 인프라를 정비했고 지난 97년에 이를 일단락지었다. 일본에서 현재 남은 과제는 QR관점에서 업무 플로를 철저히 분석하고 거래 파트너를 선정해 유통공급망 전체를 QR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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