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7회-중대형컴퓨터업계(상)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은 60년대 말 IBM이나 후지쯔 등 외국계 컴퓨터업체들이 한국지사를 설립한 이후 태동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컴퓨터 수요자체가 정부나 은행 등 공공기관에 한정돼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외국 컴퓨터업체들이 속속 한국내 영업거점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국내 컴퓨터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초창기 이들 외국컴퓨터업계에 근무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천한 국내 컴퓨터시장에서 30여년동안 외국업체에 몸 담고 있으면서 축적한 기술이나 경험을 뒤따를 만한 국내 기업출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컴퓨터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은 단연 한국IBM 출신들이 많다.

한국IBM과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 진출했던 한국후지쯔 출신들이 컴퓨터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한국IBM과 한국후지쯔가 각각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IBM의 입사조건이 영어였다면 한국후지쯔는 일본어였음은 현재 국내 컴퓨터산업이 미국업체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능숙한 영어와 한국IBM의 체계적인 교육을 쌓은 한국IBM 출신들은 70년대 이후 수많은 미국계 컴퓨터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한국IBM 출신들이 새로 회사를 세우면 곧바로 한국IBM의 고객이라는 개방적인 정책을 내세웠던 회사의 전략도 국내 컴퓨터업계 전반에 한국IBM 출신들이 뿌리를 내리게 한 자양분이 됐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IBM 출신으로 현직에 남아 있는 최고참은 조완해 한국유니시스 회장, 오창규 링크웨어 회장, 김형회 한국IBM 수석전무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완해 한국유니시스 회장(54)은 한국IBM 전무를 끝으로 왕코리아 부사장을 거쳐 한국유니시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12년동안 자리를 지켜 외국컴퓨터업체 사장으로는 최장수의 기록을 낳기도 했다.

오창규 링크웨어 회장(58)은 한국인으로는 처음 한국IBM 사장에 올라 외국인이 자리를 차지했던 외국컴퓨터업체 지사장에 한국인들이 오를 수 있도록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이북 출신으로 서울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91년 한국IBM 사장에 취임했다. 96년에는 한국IBM 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97년 IBM이 LG전자와 합작으로 세운 LGIBM 대표이사 사장으로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인 링크웨어 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컴퓨터업계에서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벤처육성에 나서고 있다.

김형회 한국IBM 수석전무(56)는 전형적인 참모형으로 한국IBM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한국IBM을 대표해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왔으며 현재도 마케팅총괄본부를 맡으면서 한국IBM의 대외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배재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이들 3명 이후에는 70년에 한국IBM에 입사한 여인갑 시스코프 사장(54)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컴퓨터업계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복고 출신으로 서울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했다. 한국IBM에 이어 삼성전관, 한국HP 등을 거쳤으며 91년 한국데이타제너럴사의 지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의 길에 들어섰다. 95년 지멘스정보시스템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후지쯔와 지멘스가 컴퓨터사업을 통합하면서 올해 시스코프라는 종업원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IBM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경영인을 꼽는다면 단연 신재철 현 한국IBM 사장(52)이다. 72년부터 한국IBM이 사업확대를 위해 대거 직원들을 뽑기 시작했지만 73년 한국IBM에 입사한 신 사장은 초단기로 승진을 거듭, 동기들을 따돌리면서 87년 40세의 나이에 한국IBM의 영업을 총괄하는 전무의 자리에 올라 사내에서는 일찍부터 차기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견돼 왔다. 96년 한국IBM의 사장으로 취임해 가장 유능한 한국IBM 영업맨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천 출신으로 제물포고,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70년대 후반 이후 입사한 한국IBM 출신의 대표적인 경영자들로는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 김용대 SGI코리아 사장, 김재민 한국유니시스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49)은 IT업계에 무려 16개 기업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벤처경영인이다. 강릉출신으로 경복고,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했다. 최근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던 다우기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줘 IT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으며 앞으로 사이버증권사인 키움닷컴의 경영에 전념할 계획이다.

김용대 SGI코리아 사장(47)의 이력도 컴퓨터업계에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한국IBM에서 13년동안 경력을 쌓은 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상무, 다우기술 본부장 등을 거쳐 96년 한국데이타제너럴 사장, 98년 한국실리콘그래픽스 사장을 맡아왔다.

최근 한국유니시스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재민 사장(47)도 한국IBM이 배출한 대표적인 경영인중 한명이다. 78년 한국IBM에 입사했으며 삼성데이타시스템, 콘트롤데이타코리아 사장, (주)MS 대표이사 사장을 거쳤다. 과감한 추진력과 개방적인 사고로 보스기질이 있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경복고,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이밖에 이수현 델컴퓨터 사장, 김지문 전 사이베이스 사장과 이상일 현 사이베이스 사장, 김광원 인포믹스 사장, 최해원 SAP코리아 사장 등도 한국IBM 출신으로 국내 컴퓨터업계에서 성가를 높이고 있는 경영인들이다.

70년대까지 한국IBM에 입사한 이른 바 고참들은 「아이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해 친목을 다지고 있으며 그 이후의 한국IBM 출신들은 이와는 별도의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IBM 출신들이 이처럼 국내 컴퓨터업계에 화려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초창기 한국IBM과 함께 국내 컴퓨터산업을 일궈왔던 한국후지쯔 출신의 경영자들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앞서 지적했듯 컴퓨터시장 자체가 일본이 아닌 미국업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한국후지쯔 출신의 대표적인 경영인으로는 황칠봉 전 데이콤시스템테크놀로지 부회장(63)을 꼽을 수 있다. 황 부회장은 한국후지쯔 전무를 끝으로 금성소프트웨어, 금성히타치시스템, 효성데이타시스템 등 일본 컴퓨터업체들이 세운 국내 합작사 사장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일본계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후지쯔의 사장을 맡은 이경호 사장(57)은 현재 SI업체인 교보정보통신의 사장으로 다시 한번 경영인으로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경호 사장보다 1년 늦게 한국후지쯔에 입사한 임의건 전무(53)는 아직도 한국후지쯔에서 서비스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말 그대로 한국후지쯔의 산증인이다.

안경수 한국후지쯔 사장(47)은 96년 한국후지쯔 고문으로 연을 맺기 이전까지는 국내 기업에서 활동한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대우전자에서 출발해 다우기술 공동대표, 삼성그룹 및 삼성전자 등에서 근무했다. 특히 삼성전자를 국내 제 1의 컴퓨터공급업체로 올라서게 한 일등공신으로 그가 가는 곳마다 사업이 최절정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후지쯔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한국후지쯔의 매출을 취임 전보다 3배 이상 늘린데다 미 스탠퍼드 박사라는 화려한 캐리어는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후지쯔 본사 회장단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IBM과 한국후지쯔에 의해 주도되던 국내 컴퓨터업계는 80년대 초반 HP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양상을 맞게 된다. HP가 삼성과 손잡고 84년 세운 삼성휴렛팩커드는 한국IBM과 한국후지쯔의 뒤를 이으면서 최근 들어 컴퓨터업계의 주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한국IBM에 필적할 만한 경영인은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이것은 연륜이 짧은데서 비롯된 것으로 아직은 대부분 한국HP 내에서 경영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준근 한국HP대표이사 사장(47)은 84년 삼성휴렛팩커드에 입사해 95년 삼성휴렛팩커드가 한국HP로 바뀐 95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관리형경영인으로 모든 사업부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는 HP조직을 원만하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 사장이 관리형이라고 한다면 김윤 부사장(50)은 전형적인 영업맨이다. 한국유니시스의 전신인 스페리코리아에서 영업을 시작해 85년 삼성휴렛팩커드에 입사하면서 김 부사장은 영업맨으로서 현재 한국HP의 중심인 컴퓨터시스템사업본부장으로 한국HP를 매출액 1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의 컴퓨터회사로 육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부산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김윤 부사장과 함께 한국HP 영업의 또 한 축을 맡고 있는 유원식 전무(41)는 HP 성골출신이다. 81년 삼성전자 HP사업부로 입사해 84년 삼성휴렛팩커드가 설립되면서 곧바로 삼성휴렛팩커드로 전배돼 현 PC및 주변기기사업본부장에 이르기까지 한국HP의 전 영업부서를 섭렵했다.

대내외적으로 한국HP출신으로 주목되는 경영인은 김두수 삼보컴퓨터 사장(41)이다. 한국HP내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전 직원들에게 희망을 던졌던 김 사장은 한국HP의 PC 및 프린터영업을 총괄하다 한국HP를 퇴사했으나 경쟁업체인 삼보컴퓨터의 이홍순 부회장(당시 사장)의 간곡한 요청으로 삼보로 자리를 옮긴 이채로운 경력을 지니고 있다. 부산 동아고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이들 한국HP 출신들은 지난해 「인우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어 1년에 두번씩 현직 한국HP경영진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지난해 첫 모임에 무려 30명 이상이 참가해 한국HP의 인맥이 앞으로 국내 컴퓨터업계에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