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비전있는 사회

박재성 정보통신부장

지난 세기는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굴종의 역사였다. 서구 열강이 주도하는 산업화에 뒤졌던 탓이다. 산업화에서 앞선 몇몇 제국으로부터 국가는 주권까지 유린당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면서 주변부였던 우리의 국민은 핵심부인 선진국으로부터 저임금으로 착취당했다.

그래서 새 밀레니엄에서는 우리가 역사의 중심에 당당히 서고자 기대했다. 자본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기를 열망했다.

이제 새 밀레니엄에 접어든지 3개월이 다됐다. 지구촌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의 비전은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현재로선 그것의 여부를 속단하기 어렵지만 새 밀레니엄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자본주의 틀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계층을 가름하는 것은 이젠 더이상 신분도 아니다. 자본이 자본을 낳았던 공식은 깨지고 있다. 과거 부의 창출 원천이었던 생산 수단은 이젠 예전처럼 강력하지 못하다. 자본가가 독점했던 생산수단과 생산도구는 개인도 얼마든지 지닐 수 있게 됐다.

그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무대는 정보기술(IT)이다. 이젠 정보기술이 부의 창출 원천이 돼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사회를 변혁시키는 원동력이다. 거대한 업체들의 M&A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연초에 단행된 타임워너와 아메리카온라인의 합병은 서막에 불과했다. IT업체의 합종연횡이 지구촌의 경제 구조를 바꿔놓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몸짓이 예측하지 못할 또 다른 환경을 만들어 낸다. 천지창조의 비밀이 담겨있는 빅뱅은 IT로 인해 촉발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희망적이다. 인류의 생활 양식을 바꿔놓는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통신분야에 있어서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제국주의에서는 총칼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했고 자본주의에서는 토지나 공장과 같은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세상을 주도했다. 이젠 창조적 지식, 특히 IT분야의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이 세상은 열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고급 두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특히 대기업체나 연구소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쓸 만한 사람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외국에서 수입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적지 않다.

IT분야에서 인력이 태부족인 것은 급격하게 증가하는 IT분야의 수요를 대기 어려운 탓도 있다. 그렇지만 인력이 빠져나가서 부족한 데에는 경영자의 탓이 크다. 정보통신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정계로 빠져나가고, 또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경영자는 전문 인력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쓸 만한 인재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또 벤처행으로 치닫기 바쁘다. 기존 체제에서 비전을 상실한 그들은 개인적인 비전을 찾아 나서고 있다.

고급인력이 부족한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한해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인력양성에 쏟아붓고 있지만 대부분은 공급자인 훈련기관 중심의 교육에 치중되고 있다. 타율적이고 주입적인 종래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싱가포르, 호주 등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일례로 미국만 보더라도 상무성의 Go4IT와 같은 프로그램은 정보제공과 비전제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사회가 자연스럽게 인적자원에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우리와는 반대로 수요자 중심의 정책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원대한 비전을 갖고 그것을 실현해 내는 빌 게이츠와 같은 사람도 나오는 것이다.

비전이 있는 곳에 인재는 모여들게 마련이다. 이 사회의 핵심인 정보통신산업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경영자가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시켜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급인력을 우대해 기업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경영자의 책무다. 희망찬 새 밀레니엄에 대한 꿈의 실현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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