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王子)의 난(亂)」 「형제간의 쿠데타」 등의 제목을 달고 요사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현대그룹 사태는 21세기 대한민국 제1위 오프라인 기업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수년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정치 관료조직을 기업보다 못한 「3류, 4류」라고 발언, 홍역을 치렀지만 이번 현대 사태는 기업, 그 가운데서도 재벌은 정부나 정치권에 비해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관료조직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꼬고 있지만 현대로 대표되는 재벌은 이보다 한 술 더 뜬 「황제적 오너」에 의해 지배되는 기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대통령이야 야당은 물론 언론이라는 견제세력을 의식해야 하지만 한국의 재벌에는 그 어떤 견제세력도, 비판세력도 없다는 「무서운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태의 반대편에는 벤처기업들이 있다. 이들이 재벌과 다른 점은 「나눔의 문화」를 실천한다는 점이다. 창업자는 물론 종업원 모두가 우리사주 혹은 스톡옵션을 행사, 회사가 성공하면 「모두가 부자」가 되는 시스템이 벤처의 특징이다. 수십년간 인생을 바쳐 봉직한 직장에서 어느날 갑자기 오너의 한마디에 파리목숨으로 전락하는 기존 오프라인 재벌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벤처기업인들은 밤새워 일하고 가족과 다름 없는 기업문화를 만들고 있다.
테헤란밸리의 벤처인들은 거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수십년간 그 어떤 절대권력도 해내지 못한 대한민국의 재벌경제를 붕괴시켰다는 자신감이다. 주식시장에서 재벌기업의 주가가 신생 벤처업체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하다거나 똑똑한 젊은이들이 모조리 벤처행을 선호하는 세태가 이를 입증해 준다.
재벌은 옥스퍼드대사전에까지 오를 정도로 한국 경제의 독특한 산물이다. 재벌은 단지 경제분야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한국을 지배하는 최대 기득권 세력이었다. 이 공룡이 디지털시대 벤처 바람에 쓰러져 가고 있다. 바로 현대그룹이 그 이유를 전세계에 「알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디지털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현주소를….
<정보통신부·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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