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에는 해야 할 일만 있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없다. 연구회가 목표를 갖고 소관 연구기관들의 연구개발사업을 조정하고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소관 출연연에 대한 경영평가작업을 하고 있지만 예산배분의 권한이 없는 연구회의 평가가 얼마나 힘을 발휘하겠나.』 모 연구회 이사장의 말이다.
연구회가 출범한 지 3개월 정도 흐른 지난해 6월 말께 기초기술·산업기술·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들은 연구회 출범과 관련해 출연연 기관고유사업 등 연구회가 자율적으로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데 필요한 연구예산으로 1800억원을 배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관 출연연에 대해 연구회가 이 정도는 해줘야 출연연에 말발이 서지 않겠느냐는 순수한 의도에서였다.
정부측의 답변은 노(NO).
알 만한 사람들이 뭘 모르고 철없는 소리를 한다는 반공개적인 비난이 난무했다.
「연구회 주제에 정부와 같이 놀려 한다」는 듯 연구회 출범 1년 동안 정부측과 연구회측의 교류는 실무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동반자 관계를 이뤄 출연연의 틀을 다시 짜고 이를 통해 국가연구개발효율성을 높여야 하는데도 정부측의 이같은 시각 때문에 삐걱거리고 있다.
연구회의 처지가 이 모양이니 출연연들이 연구회를 보는 시각도 실망스런 분위기다.
출연연의 입장에서 보면 연구회가 있지만 연구과제를 수주하려면 정부부처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연구회에 전적으로 의지하자니 연구회가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는 과학기술계의 특성상 예산 없이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
『출연연마다 연구과제가 중복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알리기를 꺼려하며 쉬쉬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 출연연의 예산집행이 따로 이뤄지기 때문에 출연연 실무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표준연 K 박사의 말이다.
출연연에서는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하면 위상저하와 생존의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뻔히 다른 곳에서도 연구가 진행되는 줄 알면서도 우선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보자는 식이다.
그래서 이대로 간다면 연구기관 본연의 연구기능은 사라지고 사업장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기술 모두 산업화와 창업에 던져넣는 것은 좋지만 3, 4년 후에는 대부분의 기술이 소진될 것이고 그렇다면 연구소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다.
연구회의 또 다른 기능인 연구기관간 중복연구과제를 가리기 위한 사전심의기능 역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현 시스템상으로 연구기관간 중복과제나 중복투자를 가린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연구과제의 타당성 검토나 출연연 연구실태 파악 정도로 그 역할이 한정돼 있고 중복과제에 대한 연구비 중단이나 조정을 강제로 집행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연구회가 출범하면서 출연연의 입장을 대변하고 경영목표가 투명해지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뚜렷이 나아지고 있는 것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연구회체제를 출범시키고 출연연 구조조정을 끝냈다고 해서 새로운 틀이 짜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가위·기획예산처·과기부 등 실세지배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연구회가 할 일이 없다.』 모 출연기관장의 말이다.
출연연 입장에서는 차라리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부부처를 직접 찾아다니는 것이 백번 낫지 연구회를 믿고 추진할 만한 일이 없다는 얘기다.
연구회가 지난 1년 동안 제자리 잡기에 많은 노력을 쏟았지만 가장 시급한 일은 제 역할 찾기와 제 몫 찾기다.
출연연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래서 연구원들이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하겠다는 연구회의 역할은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연구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격점이다.
각 출연연에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이사회가 의사결정권만을 갖도록 구도가 짜여져 있지만 출연연을 위해 상부기관인 기획예산처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맞서 당당히 자신의 논리를 주장해 관철하기란 현 시스템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저 이리저리 가라는 대로 뒤쫓아 가다가 질곡에 빠진 것과 다름없다.
연구회가 출연연에 당당하기에 앞서 상위기관에도 명쾌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출연연을 괴롭히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와닿는 기능도 없는 것이 연합이사회의 현재 위상이다. 처음에는 출연연의 상위기관으로 군림할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출연연의 예산을 확보해 주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출연연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어진 것을 뒤탈없이 운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출연연 관계자들이 연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출연연의 상부조직인 만큼 출연연의 입장을 맏형의 위치에서 정리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기초기술연구회는 중·장기 연구과제 추진에, 산업기술연구회는 산업화 기술에, 공공기술연구회는 사회현안으로 대두되는 물자원이나 에너지 문제 등 공공문제 해결이라는 대원칙이 서 있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출연연」에 연구예산을 확보해 주지 않고서는 연구회가 들러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과학기술을 아는 연구회가 좌충우돌 출연연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에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원로연구원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연구회 스스로가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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