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383) 벤처기업

IMF<1>

내가 중국에서 돌아오던 날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 듯 진행되었다. 경제계 일부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한국 경제에 거품이 일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IMF관리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IMF에 함몰될 것이라는 경고를 하였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IMF의 진통을 겪고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이웃 마을에서 불이 난 것을 구경하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 불똥이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IMF관리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것이 나의 기업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탄탄한 기반을 세워놓았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자금 축적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해가 저물면서 영업부에서 절망적인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수주를 맡아 두었던 업체들이 자금 압박으로 계약을 취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 수주를 맡아놓은 것만을 처리해도 한두 해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였다. 그런데 이미 맡아놓았던 공사의 계약을 취소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연쇄적이었다. 하나의 업체가 자동 시스템을 취소하면 다른 기업체도 취소했고, 또 다른 업체도 취소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금 압박을 이유로 대었다. 미리 겁을 먹고 시설 투자를 억제하기도 했고, 조여오는 채무 압력에 시설 투자를 뒤로 미룬다는 것이었다. 그 현상은 아주 빠르게 확산되었다.

98년이 되면서 나는 최악의 해를 맞이했다. 중국에 진출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일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탈 현상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급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1백여명의 직원 가운데 거의 반에 가까운 40여명이 연구부서 직원들이었는데, 이들을 줄이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러나 첨단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새로운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구부서를 축소하는 일은 기술자 출신인 나로서는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 직접적인 생산성과 연결이 되지 않는 입장에서 가장 먼저 줄여야 하는 부서가 연구부서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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