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저녁식사 약속을 했는데 상대편이 늦는다면 먼저 온 사람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까. N세대가 아닌 연령층의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이 경우 신문을 읽거나 독서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어울릴 법하다.
하지만 지난해 이미 2400만명 수준의 고객을 확보한 국내 이동전화업체 관계자들에게 이러한 사고는 절대로 용납되기 어려울 듯 하다. 두 사람당 한 대꼴로 보급된 이동전화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콘덴츠)만으로도 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들어 이동전화 사용자들은 복잡한 여러 경로를 거치지 않고도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 인터넷을 통한 주식정보나 뉴스, 일기예보의 확인은 물론 교통정보까지 제공받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컴퓨터나 전용단말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게임까지도 할 수 있게 됐다.
종래의 음성전달기능에 단순문자메시지전달(SMS)기능을 거쳐 이처럼 발전해온 이동전화서비스의 진화 모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동전화를 통한 상거래(Mobile Commerce)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이동전화를 통한 결제메시지 등을 외부인에게 도용당하지 않도록 하는 보안솔루션 개발까지 심각히 논의될 정도에 이르렀다.
전세계 이동전화 산업계는 이동전화 진화계통도 상에서 볼 때 1세대 아날로그 이동전화시대를 거쳐 2세대 디지털 이동전화 기술 발전의 끝부분에 와 있다. 지금 시점의 기술을 2.75세대 이동통신 기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지만 세대 규정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최근 이동전화서비스업체들로부터 제공되는 데이터 전송속도는 초당 6만4000비트(64Kbps)로 이동전화를 통해 다양한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송받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올 하반기에 이르면 144Kbps까지 가능해질 전망이다. 불과 3, 4년 전만 해도 음성전달이 고작이었던 데서 발전해 인터넷 정보까지 제공하게 된 데는 이러한 기술적 배경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개발 노력은 차세대 이동통신의 기본 정신을 살린 기술개발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서로 다른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더라도 상호 인터페이스가 가능하게 하는 프로토콜을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서비스를 불과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전세계 이동통신 관련 업계는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와 블루투스(Bluetooth)로 불리는 새로운 이동통신관련 기술성과들을 만들어 왔고 올해를 기점으로 이를 본격적으로 적용하게 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연계할 수 있으며 이동전화와 개인휴대단말기(PDA)나 PC 등이 가진 다양한 데이터를 무선으로 연계해 교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동전화단말기의 크기는 20년 동안 배낭크기에서 90g 전후로 줄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들였을 노력만큼이나 다양한 기술이 녹아들면서 이제 손 안에 든 정보교환의 마술통로로 등장했다.
이 정보전달의 핵심도구는 그 다양한 기능과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향후 필연적으로 전개될 전자상거래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실제로 WAP 솔루션을 적용한 단말기가 잇따라 개발되고 있고 이동통신용 전자인증기술도 급진전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에선 이미 이동전화를 이용한 시범뱅킹 사업이 성공했다. 여기에 전자화폐와 연계되는 지불·인증 기술 등이 결합된다면 이동전화는 가히 정보통신변혁을 기반으로 하는 인류생활 변화를 이끌어갈 핵심수단으로 자리잡게 될 전망이다.
수렵·농경민의 손에 사냥도구와 낫이 들려 있었고 산업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시계와 화폐가 이를 대신했다면 서기 2000년대 우리는 이동통신혁명을 통해 지난 수천년 동안의 생활방식을 통째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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