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은 깔끔한 전원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진주 방향으로 30분 남짓 자동차로 달리면 창원터널에 다다른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차창가로 펼쳐진 광경은 「이곳이 과연 우리나라 기계공업의 요람인가」하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하다.
산업시설 구역이 총 75만평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면서도 공단이라는 단어가 주는 칙칙한 느낌을 갖게 하지 않는다. 그만큼 준비가 잘 된 공업기지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남천을 따라 12.4㎞를 관통하는 창원대로를 경계로 북쪽은 주택지, 남쪽은 공단으로 구분된다. 주택지역도 마찬가지고 공단지역도 외형상으로는 전혀 부산함을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 업체들이 죽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지역 공장 가동률은 80%를 넘어섰다』는 한국산업단지공단 동남지역본부 김경수 본부장의 설명처럼 창원공단은 자동차·공작기계 부문의 주도 아래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창원공단에는 약 900개 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중공업·기아중공업·두산·화천기계·통일중공업 등 국내업체를 비롯해 볼보건설기계코리아·클라크머티리얼핸들링아시아·LGOTIS·한국화낙 등 기계업종이 절반 가량으로 가장 많고 대우자동차·대림자동차·한국철도차량 등 운송장비업체, LG전자·효성 등 전기·전자업체들 순으로 둥지를 틀고 있다.
이처럼 자본재를 주력으로 하는 이 지역 업체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삭풍을 맨몸으로 맞았다. 지난 97년 중반까지만해도 공장가동률이 69%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공단지역에 비해 창원의 IMF의 여파는 훨씬 더 강력했다.
이 지역 업체들이 IMF를 겪은 흔적은 바뀌어진 간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OTIS로 매각된 LG산전 창원공장을 비롯해 98년에는 삼성중공업의 중장비부문이 볼보로 매각됐다. 또 같은 삼성중공업의 지게차부문은 클라크로 넘어갔다.
해당업체 종업원들은 겉으로는 크게 괘념치 않는 표정들이다. 업체 임원들 역시 『지금 창원에는 외국업체에 대한 배타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긍정적 마인드 덕분인지 창원공단은 지난해 초부터 회복기미를 보였다.
우선 생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산단공 동남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는 목표치 14조2000억원을 16.2% 상회한 16조5074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전부문의 LG전자, 자동차부품부문에서 기아중공업(현 위아주식회사), 공작기계분야의 두산, 중장비부문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등이 이같은 호조세를 주도했다.
수출 역시 한국중공업·볼보건설기계코리아·두산 등의 선전으로 지난해에 비해 13.2% 증가한 56억6100만달러를 기록했다. 고용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동업체가 늘면서 신규채용이 늘고 있다. 실제 산단공 동남지역본부는 구직자의 전화문의에 응대하기가 바쁜 상황이다.
『IMF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위아 인사담당자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한달동안 이주업체는 12개였던 반면 입주업체는 37개사가 늘었다. 증가하는 업체 수만큼 일손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이 지역 관계자들은 경기회복을 점치기도 하지만 IMF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중공업이 발전설비·선박엔진부문의 빅딜과 민영화 등으로 어수선하고 대우중공업 공작기계부문과 기아중공업 등이 구조조정의 와중에 놓여 있다.
그러나 창원지역 업체들은 IMF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다.
창원공단에서 10년동안을 사업해온 B기계 K 사장은 IMF를 계기로 『그동안의 성과가 사상누각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토로한다. IMF를 통해 연구개발(R &D) 없이는 어떤 자생적 토양을 만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득한 것이다.
많은 업체들이 연구소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계연구소(KIMM) 분원을 제외하고 나면 이렇다할 대규모 기계 관련 연구소는 없다. 오히려 지난 76년 설립된 한국전기연구소가 이 지역 터줏대감역을 자임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전문 기계연구소가 유치됐으면 하는 것과 업체 연구소간 네트워크가 구축됐으면 하는 점이 이 지역 업체들의 숙원』이라고 K 사장은 밝힌다.
이 지역 업체들이 IMF로부터 배운 또 다른 교훈은 자체 부동산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다.
IMF 이전 평당 50만원을 호가하던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이를 두고 이 지역 업체들은 『제조업 이외의 다른 길을 넘보지 말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상황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자기자본으로 공장부지를 사는 회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지역 업체 관계자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닥치는 주식과 벤처 바람이 「남의 일」 정도로 밖에 치부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퍼진 제조업 홀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제조업 없는 인터넷은 가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창원공단의 사람들은 생활자체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만은 못해도 나름대로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분지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상층의 강한 바람이 쾌적한 생활을 가능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조성 당시부터 이 지역 관계자들은 창원에 대한 자부심이 만만치 않았으나 IMF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창원지역 업체 종사자들은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고 있다. 공단 조성 당시의 목적대로 우리 나라 자본재산업의 중추로 우뚝 서기 위해서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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