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에서 택시를 내리고 나는 바로 길 옆에 있는 쓰러져 가는 판잣집을 가리켰다. 물론, 집이 쓰러진 것이 아니고 판자로 만든 울타리가 쓰러져 있었지만 집조차 쓰러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문뜩 느낀 일이지만 부모가 살고 있는 집이 너무나 초라했다. 결혼을 하면서 그분들을 서울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쓰러져 가는 판자 울타리를 보는 순간에 생긴 마음이었다.
오래된 판자 문을 열자 삐걱 하고 소리를 내었다. 그 대문은 언제나 소리를 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 문은 소리를 내었는데, 밖에 나갔다 저녁에 집에 올 때는 그 문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왜냐하면 마당에 들어와서 방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탐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방안에서 아버지가 주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아주 밤이 깊도록 밤거리를 헤맬 때가 있었다. 더러는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대문의 설주에 오줌을 누기도 하였다. 설주에 오줌이 스며들면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추억이 어린 집 대문이 이제는 거의 쓰러져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건축을 하는 아버지가 생각만 있으면 그런 대문 정도야 단번에 고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집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나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왜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이럴 때 혹시라도 아버지가 취중일 경우 주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갔던 것이다.
마당에서 어머니를 불렀다.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밖을 내다보았다. 전 같으면 어머니가 밖으로 뛰어나와 내 손을 잡고 밥은 먹었니, 시장하지 않니, 밥을 줄까 하고 되풀이해서 무엇인가를 먹이려고 하는데, 그 때는 이상하게 방안에서 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아마도 며느리될 여자를 데리고 간다는 나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체통을 지키려고 그랬던 것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깨끗하게 한복을 입고 있었다. 외출하지 않을 때는 별로 한복을 입지 않는 어머니가 한복으로 정장을 한 것을 보면 며느리를 만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서 큰절을 하였다.
『엄마, 몇 년 전에 서울에 오셨을 때 한번 보신 일이 있을 거예요. 은행에 다니는 아가씨 있었잖아요? 바로 이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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