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IT업체의 "약속의 땅" 테헤란로 25시(3)

꿈의 공장

 새벽 1시에도 퇴근자는 아무도 없었다. 컴퓨터의 모니터는 쉴새 없이 돌아가고 누구 하나 졸린 눈을 비비는 사람도 없었다. Y사 Y 사장도 한쪽 구석에서 그날의 성과를 정리하느라 컴퓨터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치 70년대 봉제공장을 연상케 하는 키보드 치는 소리와 딸깍거리는 마우스 클릭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이윽고 새벽 2시, 몇몇이 옷을 챙겨 입고 어슬렁 문을 밀고 나간다. 인사도 없다. 낮과 밤 구분이 따로 없는 생활에서 인사란 무의미하다. 하루 24시를 꼬박 회사에서 보내는 벤처기업인들에게 이같은 생활은 일상이다.

 굳이 회사명 밝히기를 꺼리는 Y사는 비밀병기(?)를 제작중이다. 다음달 중순 세인이 깜짝 놀랄 「꿈의 인터넷」을 선보이기 위해 까만 밤을 하얗게 세우고 있다. 이 회사 Y사장은 『「모이면 회의 흩어지면 업무」라는 슬로건이 자연스럽게 사훈으로 정해졌다』며 『1분 1초도 아까운 상황에서 밤과 낮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매일 야근에 Y 사장은 좋아하는 소주맛마저 잊었다. 기자와 만나 저녁에 반주로 마신 소주 한 잔에 더없이 행복해 하는 Y 사장은 회사가 성공해 고생한 전직원을 해외여행 한번 시켜주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꿈 뒤에는 성벽같은 자신감과 배짱이 숨어 있다. 국내 굴지의 기업과 맞서 좋은 계약조건을 따내기 위해 지금 「버티기」중이다. 대기업의 서슬에 주눅부터 들던 얼마전 벤처기업의 모습이 아니다.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자신감과 함께 「우리 기술이 최고」라는 자부심도 곁들여 있다. 이러한 배짱 뒤에는 물론 기술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이미 26개의 국제특허를 내놓았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특허를 준비중이다.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져 합작, 제휴문의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온다. 투자자들도 줄을 섰다. 건건이 대답하기에도 지칠 지경이다. 『벤처는 꿈을 먹고 삽니다. 허황된 꿈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꿈을 꿀 때 그 꿈은 실현됩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직원들이 있기에 꿈의 공장이 가동된다고 볼 수 있죠.』 Y 사장의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 남짓이다.

 역삼역 사거리에서 개포동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또 하나의 꿈의 공장이 있다. 사이버 한국은행이면서 사이버 조폐공사인 전자화폐업체 이코인. 김대욱 사장을 비롯해 몇몇 직원들이 돈(?)을 찍어내느라 밤낮이 없다. 김 사장 역시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직원들이 사무실 안에서 돈을 만들어낼 때 김 사장은 만든 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소액 전자화폐 사업에 뛰어든 지 1년 남짓. 처음에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국제적인 회사로 위상을 굳혔다. 전자상거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불수단을 선불카드로 만들어냄으로써 기회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해외 펀드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고 국내 펀드업체들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등 이코인 공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테헤란로에 들어서면서 각오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매일 각오를 새롭게 다집니다. 여기서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 묻히겠다는 결사항전의 의지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김 사장은 우후죽순으로 생멸하는 벤처기업을 보며 다시한번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누가 이끌 것인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많은 벤처인들이 테헤란밸리로 몰려 인터넷 리더를 꿈꾸지만 과연 성공의 영광을 안을 벤처인은 얼마나 될까 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벤처는 설립하는 것보다 이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수천개의 테헤란로 벤처기업 가운데서 최후까지 생존능력을 가진 벤처기업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한국의 시스코를 꿈꾸며 오늘도 벤처기업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김 사장은 목적과 의지를 다시한번 되새기라고 충고한다.

 최근에는 언론 벤처인들이 만든 테헤란 「꿈의 공장」도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은 미디어」라고 외치는 이들 「꿈의 군단」이 생산하는 제품은 IT정보와 재테크관련 사이트. 전자신문 기자 출신인 이창호씨가 앞장서 만든 「inews 24(www.inews24.com)」는 3월 1일 총격을 개시한다. IT정보를 수집 가공해 기업들을 위주로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미 전열을 가다듬고 결전의 날에 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종합일간지 기자와 경제신문 기자들이 주축이 된 「머니투데이」는 이미 공장을 가동했다. 「머니투데이」는 재테크 붐에 편승해 금융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테헤란로의 공장은 아니지만 KBS PD들이 중심이 된 와우TV 역시 재테크 관련 사이트로 오는 31일 제품을 출하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벤처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넘쳐나는 돈들로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임대료를 싸게 해줄테니 주식으로 보답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아예 임대차 계약에 지분 참여를 못박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벤처붐에 편승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테헤란로의 건물주들이 속출하고 있다. 「벤처 졸부」의 양산이라는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의 공장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이네트의 박규헌 사장은 『꿈의 공장을 가동하는 동력을 흔히 펀드라고 잘못 이해하는 이가 있다. 꿈의 공장 원동력은 의지와 노력이다. 동력 비축 여력에 따라 성공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누구나 꿈의 공장을 가동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 생산된 제품의 호응도와 지속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벤처 성공 요건을 명쾌하게 정의했다.

 잘하면 몇백배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유혹만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이는 극소수다. 대다수 벤처인들은 성취감과 인터넷 부국의 명예, 「일이 좋아서」라는 단순한 명제만으로 오늘도 밤을 새우고 있다. 돈은 부수적인 대가다. 테헤란로에 넘쳐나는 눈먼(?) 돈들은 이들의 순수성에 오히려 먹물을 끼얹고 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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