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39)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이란 삶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도 새롭게 했다는 것이다. 일년 동안 소련에 가서 벌어온 돈으로 나는 기업을 확장시켰다. 회사를 서초동으로 옮기고, 사옥은 남의 것을 빌린 것이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에 연구실과 업무실을 분리해서 두었고, 직원들도 15명으로 늘렸다.

 그렇다고 그 동안 해왔던 경영이나 기술의 패턴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나는 경영과 기술 양쪽을 모두 뛸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부분적인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전에는 방적기기의 자동화라면 바로 그 기기의 자동화에 국한된 시스템을 개발하고 판매했지만, 그것을 응용해서 모든 공장 자동화를 총괄하는 데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기기를 자동화하려고 하면 전력을 자동화하고, 온도를 자동화하고, 컨베이어의 속도를 자동화하는 등 부분적으로 분리되었다. 이것을 통합하여 계측하고 제어할 수 있는 패키지를 만들어 모든 것을 자동화하면 어떨까.

 여기서 생긴 것이 바로 PCMS(Process Control & Monitoring System)였다. 그 동안에 공장자동화는 계속 연구하고 판매했지만, 이것을 통합하여 패키지화하는 작업을 나는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돈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직원을 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PCMS 개발에 전력하고, 나머지 반은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일반적인 자동화 시스템에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그것을 판매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송혜련과 결혼을 하였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은행 창구 직원으로 근무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21살이었는데, 이제 내일 모레면 서른살이 되는 노처녀가 되었다. 그 동안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었다. 기다려주었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군에 있을 때 1년 동안 미국 유학을 할 때와 그 후에도 소련에 가서 한해 동안 떨어져 있었다. 미국 유학 할 때는 사귄 지가 얼마 되지 않고 내가 매일같이 연애 편지를 보냈지만, 소련에 나갈 때는 달랐다. 그때는 별로 편지를 보낼 기회도 없었고, 사귄 지 육칠년이 지나가고 있어 서로간에 권태가 올 무렵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애인이 생기지 않았다. 다른 애인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변함없는 사랑은 평생의 동반자로서 확신을 주었는지 모른다. 일요일에 그녀를 불러서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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