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 강원대 제어계측공학과 교수
WTO체제는 세계시장을 소수의 강자들이 강점하는 정글로 만들어버렸다. 이 정글의 세계에서 승자가 되려면 표준화에서 앞서가야 한다.
표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표준압력이나 표준주파수와 같이 절대적 기준을 정하는 표준도 있고 공업제품의 품질과 생산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한국공업규격 등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기술환경에서 미래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자생적 표준이다. 표준은 크게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 및 「공적 표준(De Jure Standard)」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상 표준은 어떤 공식적인 계획 없이 만들어진 표준을 말한다. IBM PC는 개인용 컴퓨터의 사실상 표준이다.
대부분의 경쟁자들이 IBM PC를 거의 그대로 복제한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UNIX도 워크스테이션 OS분야에서 사실상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공적 표준은 공인된 표준화기구가 채택한 공식적이며 법률적 효력을 지니는 표준을 의미한다.
국제표준화 기관은 정부조약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조약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자생적인 모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실상 표준이자 공적 표준이 되어버리는 표준이다.
표준화 활동의 최대 수확이라면 처음부터 경쟁기업의 기술수준과 전략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표준화 활동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과의 사적 채널을 형성해 언제라도 협력할 수 있는 여건조성이 가능하다.
한국은 디지털TV를 개발하면서 초기부터 MPEG 미팅에 참여했다. 그래서 디지털TV를 순조롭게 개발할 수 있었고, 중요한 특허를 MPEG 규격에 반영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그 결과 디지털TV를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대화형 TV를 개발하는 개가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MPEG 규격을 채택하는 기업으로부터는 특허료도 받는다.
CDMA시스템은 한국을 이동통신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IS95 규격을 정할 때 크게 기여한 바가 없었다. 그래서 CDMA로는 성공했지만 많은 로열티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선례를 통해 처음부터 표준화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표준화 활동이 너무 앞서가 바로 제품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여건이 달라지면서 뒤늦게 급격히 시장이 열리는 일도 있다.
MP3음악이 그런 예에 속한다. MP3란 MPEG1 오디오 규격 가운데 하나로 90년대 초반 표준화가 끝났다. 재미있는 것은 원천기술이 하나도 없는 한국이 MP3의 종주국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규격화가 다 끝난 표준화 활동에 대해서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부가 ADSL 개발을 지원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시적 효과는 미미할지 모르나 잠재적 효과는 엄청난 것이 표준화 활동이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할 분야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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