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인터넷부장 kmkim@etnews.co.kr
21일 신라호텔.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언론사와 인터넷 업계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세계 인터넷시장의 큰손으로 우뚝 선 소프트뱅크 손정의(일본명 마사요시 손) 사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대중강연을 하지 않기로 소문난 손 사장이 이날 만큼은 인터넷세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로 한 것이나 구체적인 한국투자계획을 발표하기로 한 것도 세인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이유 말고도 세계 인터넷 업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한 손 사장의 방한은 항상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인터넷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으로 모든 일상용품들이 인터넷에 연결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향후 10년 동안은 무조건 인터넷시장에만 투자하겠다』는 손 사장의 말이 미국 나스닥 증시에서 인터넷 주가를 춤추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세계가 그를 인터넷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인정하는 데에는 인터넷을 읽는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우선 미국경제 회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스닥시장에 맞는 기업가치 척도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기업 가치척도를 현재의 내재가치보다 미래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지평을 넓혔다는 것이 그의 첫번째 공로다.
두번째는 51%의 지분확보라는 경영권 위주의 구태한 사고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10%, 20%의 소액 투자가치가 얼마나 커질 수 있고 상호 경영권에 천착하지 않을 때 기업이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이가 바로 손정의다.
이날 강연에서 손 사장은 많은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강연했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내가 4년 전에 고작 매출 200만달러에 불과한 야후에 1억달러를 투자해 35%의 지분을 확보한다고 발표했을 때 미국 언론은 한결같이 「마지막 남은 일본 거품경제의 사내」라고 평했다』고 말했다.
그 1억달러는 현재 420억달러로 불어났고 단 35%의 지분만으로도 세계 인터넷 업계의 왕자로 등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야후 투자를 통해 보여준 셈이다.
그는 PC시장이 현재 4조억원 규모인 데 비해 인터넷 시장은 이의 10% 수준인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예를 들어 이제 인터넷시장은 시작단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는」 대기업은 이 기회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기존 대기업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인터넷이 초래할 변화를 과소평가하거나 의사결정 구조상 그 변화에 대한 대응속도가 매우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것. 설사 그 변화에 적응했다 해도 환경은 이미 더 변화해 마치 「나는 화살」꼴의 형국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에 어쩔줄 몰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엔 뼈아픈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계는 인터넷으로 대통합된 지구촌이다. 천박한 자본도 아니고 소유권을 앞세운 경영도 아닌 인터넷이란 네트워크로 구성된 상호협력에 의한 디지털대통합(DI)이다. 이를 위해 수년내에 세계 780여개 인터넷업체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기존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도 불가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경제재편 따위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손 사장의 관심사는 단지 인터넷을 통한 인류의 건강한 삶이다. 그가 어느 국가를 가든지 방문국가의 대통령을 만나 항상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게 초고속환경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인터넷으로 세계를 묶는 혜안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 사장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언젠가는 컴퓨터가 인간의 뇌보다 정교하고 똑똑한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한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터넷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65㎝를 넘을까 말까 하는 그의 단구가 유난히 커 보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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