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지식인은 이런 공포에 대해서도 타성에 젖었고, 오로지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나는 모스크바 대학원을 다니면서 교수를 비롯한 학생에 이르는 지식인들이 그렇게 공포에 대한 타성과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오히려 마음에도 없이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정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내는 이중성을 보였다.
나타샤 역시 그런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고위 당간부인 것에 비하여 정부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가을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함께 교정 앞을 걸었다. 밤 11시가 되었는데 백야현상 때문에 온통 환하게 밝은 레닌 언덕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지금 문제는 몇 가지 이율배반적인 것에 있어요. 정직한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하고, 원칙과 실제가 뒤틀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데 있어요. 알코올 중독자가 된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너무나 고질화된 관료주의가 깊어 그것을 치유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문제의 시급은 그 고질화된 관료주의를 치유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어요.』 그녀는 내가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러시아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어서 말했다. 바람이 불자 그녀의 긴 금발이 펄럭였고, 머리에서 아카시아 꽃 냄새 같은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프랑스제 샴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물자가 부족한 소련에서도 고위 당간부의 집에서는 프랑스 등의 유럽제 생필품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버드블루, 지금 소비에트 연방에서 줄을 서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못했다. 모른다고 말하자 그녀는 보드카라고 대답했다. 『그래요? 지금 소련에서는 호텔을 제외하고는 술집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요?』
『최근 40년간 소련의 총 인구는 35% 늘었는데, 알코올의 생산량은 7배 증가했고,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자는 심장병과 암에 버금가는 제3위를 차지해서 미국의 알코올 중독 사망비율의 90배에 이른다고 해요. 이 알코올 문제는 최근 이혼이 많아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해요.』
나타샤는 소련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언덕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밤은 깊어 가는데 날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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