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르바트 거리를 돌아보고 곧 대사관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 숙소 관리소와 인사과에서 필요한 서류를 요구해서 그것을 만들어주고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는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문뜩, 서울에 두고 온 회사 직원들이 떠오른다. 전 같으면 어머니의 얼굴이나 애인 송혜련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회사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직원들의 모습이 가족처럼 연상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로버트의 안내로 대사를 만났다. 그는 한때 CIA부국장까지 지냈던 변호사 출신이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는 형식적인 어투로 환영한다는 짧은 말을 하였을 뿐 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 주재 CIA의 총 책임자인 공사를 만나고, 다른 간부들에게 인사를 마쳤다. 내가 일하는 방은 지하에 있었는데, 이미 컴퓨터를 비롯한 연구 집기가 정돈이 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지하실의 연구실에서 무선과 유선 통신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것이다. 나의 요구에 따라 컴퓨터는 관사 숙소에도 놓여졌다.
당시 내가 연구하는 과제 가운데 한 가지는 소련에서 개발한 도청 방지 시스템의 역기능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도청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있었지만, 소련은 그것을 방해하는 역기능 시스템을 개발해서 사용했다. 달리 말해, 도청 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것을 다시 무력화시키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내가 연구하는 또 다른 과제는 실제 응용을 하려고 하는 초고주파 감청 시스템이었다. 고주파 감청 시스템은 이미 활용이 되고 있었다. 10㎑에서 100㎒에 이르는 주파수는 보통 무선 전신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에 보다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음파 시스템의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것을 굳이 모스크바에 와서 연구하려는 것은 실제 응용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위해서였다. 연구 활동 못지 않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모스크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위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 나에게 큰 소득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대사관에 입관한 지 며칠 후에 나는 대사관의 문관 에드워드의 안내를 받아 모스크바 대학을 방문했다. 연구 과정이기는 하지만, 나는 대학원 우주공학부에 입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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