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93)

 나는 어떤 형태로든 첩보활동을 할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컴퓨터 산업에 대한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보 수집이란 직업이 나의 성격에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CIA 부국장이 나를 끌어들이려는 눈치를 보이자 거절했다. 그러나 부국장 헤밍웨이는 재빨리 나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단서를 달았다.

 『미스터 최, 요원이 돼 달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 기관에 기술 용역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기술 용역을 해주는 촉탁이라고 할까. 일년만 일해 주십시오.』

 『어디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모스크바에 가야 합니다.』

 『역시 첩보활동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기술 용역입니다. 일년간 일해 주면 연봉 50만달러를 드리겠습니다.』

 『기술 용역이라면 가능합니다.』

 기술 용역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연봉 50만달러라는 말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당시의 환율로 보면 상당한 대우였고, 무엇보다 나는 50만달러에 대한 매력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에 일본 다이묘 주물공장에 기술 로열티로 판 것이 50만달러였던 것이고, 그 매력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헤밍웨이와 나는 함께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그는 대사관 차를 손수 운전했다. 나에게 상의할 일이 있다고 만나기를 원했던 그는 호텔 로비에서는 전혀 내용을 말하지 않고 승용차를 탄 이후에 용건을 말했던 것이다. 통신 관련 책임자다운 보안 유지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노이로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이 감청 책임자다 보니 자신의 말도 어느 순간 감청이 될 것이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당시에 내가 개발하고 있는 자동화 장치는 그렇게 알려진 분야가 아니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미국이라 할지라도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일본이나 미국의 실리콘밸리 계통에서 싹이 터 발아하고 있는 단계였다. 그래서 사업 초기에는 거의 일본이나 미국에 기술 용역을 하는 것에서 시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처럼 한국의 고려방적에 납품을 했지만, 그것은 사업의 실패를 몰고 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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