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것은 심증이지 확증은 없었다. 노정기 과장이 배용정을 고발하자고 하였지만, 증거를 찾기도 힘들지만, 설사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를 고발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 프로그램을 빼돌리고, 그 공로로 대동에 갔어도 고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의도적으로 불량품이 나오게 하고,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납품해서 나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를 고발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어떠한 치명적인 위해를 입혔다 할지라도 그는 나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는 알 수 없다. 훗날 그를 만나 물어보았지만, 그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그 주장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의도적인 배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배신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려방적에 납품한 자동제어장치의 오작동 발생과 전량 교환은 나에게 커다란 후유증을 안겨 주었다. 나는 은행을 비롯한 사채시장에 상당한 빚을 지게 되었고, 그것은 쉽게 극복되지 않고 계속하여 자금 압박을 주었다. 그 무렵 회사에 출근을 하여 자금담당 유성진 과장과 머리를 맞대고 오늘 돌아오는 어음결제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이 일과였다. 돈이 메워지지 않으면 유 과장과 나는 돈을 빌리러 동분서주하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기업은 이런 것이 아닌데 하는 회의가 들었다. 돈을 빌리러 다니는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기업체를 만나 비즈니스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돌아오는 어음에 공포를 느끼면서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내가 결제해야 하는 돈이 그렇게 큰 액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러는 송혜련이 막아주기도 했다. 송혜련은 은행에 근무하면서 나의 또 다른 자금 담당자가 된 것이다. 은행 당좌계에서, 송혜련의 역할로 해서 하루 정도 자금 융통이 가능한 일도 있었다. 그것은 하루 정도 여유가 있는 다른 거래자 돈을 대신 사용하고 메워 넣는 변칙적인 일까지 했던 것이다. 송혜련한테 그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를 사문서 위조와 공금 횡령범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새로운 어음을 발행하여 돈을 빌리고, 다시 그것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어음을 발행해서 사채시장에서 교환했다. 이렇게 반복을 하면서 그 이자가 늘어났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다가 86년 봄에 부도를 냈다. 그때 나는 일본 오사카 마스다 수자원환경센터에 머물고 있었다. 통보를 받고 나는 비행기편으로 황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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